복화술로 터진 '시카고', 뮤지컬 대표 브랜드가 되다

장병호 기자I 2024.07.01 05:45:00

[뮤지컬 ''시카고''의 이유 있는 흥행]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고전 중의 고전''
''밈'' 인기에 20대 발길 이어지며 ''대박''
막장 스토리 속 여성 연대로 통쾌함 선사
"스타 캐스팅 아닌 작품 매력으로 흥행&quo...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무대가 저게 다야?”

뮤지컬 ‘시카고’ 빌리 플린(최재림 분), 록시 하트(티파니 영 분) 넘버 ‘위 보스 리치드 포 더 건’ 공연 장면. (사진=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가 공연 중인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시카고’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시카고’에는 화려한 무대가 없다. 공연장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가 전부다. 실망도 잠시, 막이 오르고 흥겨운 재즈 음악과 배우들의 끈적한 춤이 펼쳐지면 관객은 이내 공연에 빠져든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가는 관객 표정에선 흥분이 식지 않은 듯 열기가 가득하다.

◇스테디셀러 ‘시카고’, 2021년부터 ‘흥행 대박’

뮤지컬 ‘시카고’ 벨마 켈리(윤공주 분) 넘버 ‘올 댓 재즈’ 공연 장면. (사진=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가 또 한 번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7일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시카고’는 대부분의 회차가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이다. 디큐브 링크아트센터는 서울 도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신도림역 인근에 위치해 뮤지컬 흥행이 쉽지 않은 곳으로 여겨진다.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선 “‘시카고’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의 선입견을 깼다”는 말도 나온다.

‘시카고’는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로 여겨지는 안무가 겸 연출가 밥 포시(Bob Fosse, 1927~1987)의 대표작으로 1975년 초연했다. 금주령이 시행되던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른 두 여인 벨마 켈리, 록시 하트가 속물 변호사 빌리 플린을 만나 재판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 안무가 앤 레인킹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으로 재탄생했다. 현재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고전 중의 고전이자 ‘브로드웨이의 상징’이다.

한국에선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가 2000~2001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처음 선보였다. 2003년 영국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팀이 내한공연을 했고, 이후 2~3년 간격으로 한국 배우들의 공연과 해외 내한공연을 번갈아 열며 흥행을 이어왔다. 꾸준히 잘 팔리는 공연이었지만, 2021년부터 ‘시카고’의 한국 흥행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30~40대 관객이 주로 찾는 ‘스테디셀러’였다면, 2021년 공연부터 20대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 중이다. 2021년 공연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객석점유율 96%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올해 공연 또한 티켓 예매처 인터파크 기준으로 20대 예매율이 무려 41%에 달하며 인기다.

◇단순한 무대·의상, ‘세련미’로 젊은 세대 사로잡아

뮤지컬 ‘시카고’ 벨마 켈리(최정원 분) 넘버 ‘올 댓 재즈’ 공연 장면. (사진=신시컴퍼니)
‘시카고’ 흥행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온라인 홍보에 집중하며 선보인 넘버 ‘위 보스 리치드 포 더 건’(We Both Reached for the Gun) 영상이다. 극 중 빌리 플린이 록시 하트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2021년 공연부터 빌리 플린 역을 맡은 배우 최재림이 복화술을 선보인 것이 ‘밈’(meme,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인기를 얻었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서 575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시카고’에서 복화술은 사실 공연의 큰 볼거리가 아니었는데, 최재림의 영상이 이슈가 되면서 ‘시카고’를 대표하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며 “매 공연 똑같은 안무가 없을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는 해외 창작진과 이를 열심히 소화하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심플 이즈 베스트’를 보여주는 무대와 의상 등이 젊은 세대에게 세련된 매력으로 다가가면서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불륜과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담아낸 ‘시카고’의 스토리를 즐기는 방식도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미국에선 ‘시카고’를 과거를 풍미했던 쇼비즈니스의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즐긴다면, 한국은 막장 이야기 속 여성들의 연대로 작품을 즐긴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공연계에서 여성 중심 서사가 부각되면서 ‘시카고’도 이러한 시선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막장 코드 속에서 여성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관객에게 통쾌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시카고’는 스타 캐스팅에 치중하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출연 배우들의 매력을 고루 보여주며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공연도 캐스팅과 상관없이 모든 회차가 고른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지 교수는 “신시컴퍼니가 작품 자체의 매력만으로 관객 사랑을 받으며 ‘시카고’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평했다. ‘시카고’는 오는 9월 29일까지 공연한다.

뮤지컬 ‘시카고’ 록시 하트(민경아 분) 넘버 ‘록시’ 공연 장면. (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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