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재무위기 속 새 수장을 맞은 한전이 추석 명절 전 경영혁신과 내부개혁을 위한 ‘특단의 경영쇄신안’을 내놓는다.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포석으로 국민적 동의를 먼저 구한다는 김 신임 사장의 의지다. 이른바 ‘선(先)개혁 후(後)요금조정’이다.
한전 설립 62년 만의 첫 정치인 출신 사장답게 더 선명한 메시지로 국민과 당정을 상대로 요금 인상의 명분을 얻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 안팎에선 김 사장이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과 소통 능력을 발휘해 한전의 입장, 즉 현 부채 해소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기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을 당정에 잘 대변해주리란 기대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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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20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열린 제22대 한전 사장 취임식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취임사를 발표했다. 그는 “한전은 지금 절체절명 위기 앞에서 ‘제2의 창사’라는 각오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벼랑 끝에 선 현재의 재무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게 당면 과제”라며 “전기요금 정상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한전 누적적자의 주원인인 ‘역마진’ 구조는 탈원전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국제연료가격 폭등과 탈원전 등으로 상승한 원가를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현재 한전의 재무상황을 언급하며 직원들에게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 한전의 누적적자는 47조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600%에 육박한다”며 “특히 201조원의 한전 부채는 국가 연간 예산의 30% 수준인데 한전의 연 매출 전체를 3년 내리 쏟아부어도 다 갚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 “우리의 뼈를 깎는 경영혁신과 내부개혁 없이는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같은 날 취임한 방문규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도 궤를 같이한다. 방 장관은 앞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서는 한전의 추가 자구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 개혁방향으로는 △비대해진 본사 조직 대폭 축소 △사업소 거점화 및 광역화 추진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혁신 및 민간수준의 과감한 보상체계 마련 △IT·모바일을 활용해 업무 효율과 고객 서비스의 질도 획기적으로 개선 등을 제시했다.
추가적인 ‘특단’의 대책도 언급했다. 추석 전 발표가 유력하다. 대책 속에는 추가적인 자산 매각과 인적 쇄신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4분기 전기요금 조정 시점 순연될듯
다만, 이 과정에서 4분기 전기요금 조정 시점은 순연될 전망이다. 전기요금을 이루는 세부 요금 중 연료비조정요금은 1킬로와트시(kWh)당 ±5원의 범위에서 조정되는데 이는 법정기한이 매 분기가 시작되기 전달의 21일까지다. 그러나 또 다른 세부 요금인 ‘전력량요금’은 정해진 기한이 따로 없이 조정할 수 있다.
앞서 한전은 지난 5월 비핵심자산 매각과 전력설비 건설 이연, 임직원 임금 반납 등을 통해 3년간 25조원의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겠단 자구책을 마련했는데 이 과정에서 2분기 전기요금 조정 법정기한이 한 달여 미뤄진 바 있다.
김 사장은 한전의 중·장기적인 비전도 제시했다. KT, 포스코, 이탈리아 전력회사 ENEL의 사업 다각화 등 대변신으로 성공한 기업을 예로 들며 한전도 변해야 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기요금에만 모든 것을 거는 회사가 돼선 안된다”며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서 전기요금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총수익의 30% 이상을 국내 전력판매 이외의 분야에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사업은 자금력과 기술력, 풍부한 해외 파이낸싱 경험을 갖춘 한전 주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10개 부처 29개 관련 법률의 인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계획입지 제도를 도입해 신재생의 질서있는 보급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구체적으로 “대규모 해상 풍력 등 민간 독자 수행이 어려운 분야에서 산업생태계 전반에 걸친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한전이 신재생 사업을 하더라도 한전과는 무관한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회계를 분리하고 망 중립성과 관련, 계통 접속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한전의 발전 사업 참여에 대한) 우려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