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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사태 반면교사 삼자…저축은행 부실 전 선제적 구조조정 허용

서대웅 기자I 2023.05.23 05:05:25

금융당국, M&A 규제완화 추진 까닭은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우려 커지자
''부실확정 뒤엔 피해확산 막기 늦어''
덩치 키워 ''부실 도미노'' 방지 기대
''지방은행 대항마로 키우기'' 목적도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정부가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규제 완화에 나선 것 시장 중심의 자율 구조조정을 활성화해 ‘부실 도미노’를 막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올해 초 터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저축은행 한 곳의 부실이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곳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다.

여기에 비수도권 지역 저축은행의 덩치를 키워 수도권-비수도권 회사 간 경쟁, 지방은행 대항마로서 저축은행-지방은행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목적도 깔려있다. 저축은행 M&A 규제 완화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안건에 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부실우려 직전 ‘그레이존’ 회사 늘어

현행 저축은행 M&A 규제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다. M&A 규제 핵심은 저축은행 대형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 사태 여파가 수그러진 2015년 9월 영업구역을 확대하는 저축은행 간 합병 인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2017년 4월엔 이를 포함해 동일 대주주가 2개 저축은행까지만 소유·지배할 수 있다는 지침을 정례회의(2017년 제7차) 보고를 통해 만들었다.

업계는 5~6년전부터 이러한 M&A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올해 2월 SVB 사태 이후다. 금융회사 1곳의 위기가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다른 회사로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뱅크런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해도 우리는 M&A 규제로 인해 인수합병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이 경우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금융당국이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실제로 현행 저축은행 M&A 지침으론 부실 또는 부실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이 돼야 M&A가 가능하다. “한 곳이 부실화하면 그땐 너무 늦는다”는 지적이 업계는 물론 당국 내에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 회사의 부실이 확정돼 알려지면 정상 회사로까지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건전성·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회사도 유동성 이슈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업계 구조조정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그레이존’(9~10%대)에 포함된 곳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7곳에 달한다. 그레이존은 아니지만 11%대인 회사도 12곳이다. 그레이존은 법적 적기시정조치 대상은 아니지만 당국이 집중 관리하는 대상이다. BIS비율이 7~8%대로 하락하면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

당국 관계자는 “올해 영업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자산건전성이나 재무건전성 지표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결국 부실 또는 부실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한 뒤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하면 시장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M&A 규제를 완화해 시장 자율의 구조조정을 활성화함으로써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이르면 하반기 업계 지형 변화

지난 2월부터 가동 중인 은행권 제도개선 TF 과제와 맞물리면서 저축은행 M&A 규제 완화에 힘이 더 실렸다. TF는 은행권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전환해 신규 플레이어를 진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전환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지방은행 대항마로 키우는 방안으로 M&A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또 저축은행이 없는 금융지주, 저축은행을 보유하고 있으나 영업구역이 한정적인 금융지주 가운데 저축은행 수요가 있는 곳에 M&A 길을 터주면 포용금융 확대를 기대할 수도 있다.

저축은행 간 경쟁도 기대하는 눈치다. 저축은행 총자산은 지난해 말 139조원으로 2017년 말(60조원)과 비교하면 최근 5년 새 2배 이상 커졌지만 최상위권 회사가 이끈 결과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수도권 저축은행이 비수도권의 부실 회사를 잇따라 인수하며 수도권 회사와 비수도권 회사 간 격차가 커졌다.

이르면 하반기 업계는 지형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현재 79개 저축은행 체계는 2015년에 재편돼 이어지고 있다. 오는 9월을 전후로 업계 내 작지 않은 M&A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형 회사는 물론 수도권 지역의 한 대형 저축은행이 M&A를 위한 내부 절차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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