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생생확대경]반도체에 정치적 잣대 들이대지 말라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이준기 기자I 2023.03.21 05:00:00
[이데일리 이준기 산업부 차장]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전략 육성전략’은 용인에 2042년까지 삼성 투자를 바탕으로 3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규모만 보더라도 전체 육성 투자액(550조원)의 절반 이상이다 보니 비수도권의 실망감이 적잖다. 삼성 유치는 곧 지역발전이란 공식 때문일 터다. 경기도 내 다른 지역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비수도권의 논리는 이렇다. “첨단산업의 수도권 집중이 지방소멸을 심화시킬 것”이란 주장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분석이라는 데 전문가들 의견은 일치한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지방 생태계 기다릴 여유 없다

삼성은 TSMC와 달리 반도체를 제조하는 동시에 설계도 하는 종합반도체 회사다. AMD·인텔·퀄컴·애플 등은 경쟁자이자 파트너사이고, 때론 파운드리(위탁생산) 고객사이도 하다. 시스템반도체에 약한 삼성으로선 고객사 및 파트너사 확보를 경영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용인 클러스터 조성이 마무리되면 기흥·화성, 평택에 이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삼각편대’가 완성되고 더 나아가 판교 ‘팹리스 밸리’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네덜란드 ASML·미국 램리서치·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등 세계 4대 장비회사들까지 아우르는 메가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해진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하나로 연결되는 생태계 조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반도체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만약 시스템반도체 공장이 본사인 수원과 멀리 떨어진 강원이나 호남, 제주에 있다면 글로벌 고객사 유치나 주변 팹리스·소부장 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50개 주(州) 가운데 유독 텍사스·애리조나를 선호하는 건 관련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만든 탄탄한 네트워크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인력 확보 문제도 고려됐다. 지금도 해마다 3000여명의 인력이 부족한데, 공장이 비수도권에 지어질 경우 이 문제는 더욱 풀기 어려워진다. 특성상 막대한 규모의 전기·용수가 필요한 만큼 수도권 내 대단지 조성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 패권전쟁이 한창인 지금 지방의 반도체 생태계가 자라나는 걸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했다. 대신 삼성은 정부가 국가첨단전략 육성전략을 발표한 날 충청·경상·호남에 10년간 60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분야는 반도체 패키지·최첨단 디스플레이·차세대 배터리·첨단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으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지방 생태계 조성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정부·삼성의 종합적 판단 결과물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는 삼성을 자의 반, 타의 반 중국과 서서히 ‘손절’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고 있다. 그렇다고 서방의 편에 서기도 꺼림칙하다.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을 내밀며 자국 내 공장 유치를 압박하고 있지만, 그 조건을 뜯어보면 ‘대중 투자 10년간 금지’와 같은 삼성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소조항이 가득하다. 정부·삼성의 용인 투자 결정은 대내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 결과물이다. 지금은 한국이 반도체 중심이 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그다음이어야 한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