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예술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에 관해

김보영 기자I 2023.03.13 05:10:00

심사위원 리뷰
한민규 연출(극단 혈우) '작가노트-사라져가는 잔상들'
자신이 하는 이야기의 무게에 대해 고민한 작품

연극 ‘작가 노트-사라져가는 잔상들’ 공연 사진. (사진=극단 혈우)
[마정화 드라마투르그] 한민규의 ‘작가 노트-사라져가는 잔상들’(이하 작가노트)은 연극에 대한 연극이다. 연극은 “연극 같은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연극을 모시느라 삶을 다 써버렸네.”라는 작가의 말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꽤 성공적인 연극을 써 왔던 작가는 “연극을 모시는데 삶을 다 써버렸다”는 회한을 되뇌며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해 보려 시도한다. 동료들마저 그 고집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움켜쥐고 있었던 파편적인 이야기들의 다른 결말을 맺어주겠다는 황당한 결심을 바꾸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걸고 연극을 만든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계속 좌절하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작가는 연극을 모시고 살아 온 인생이 어떻게 연극이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마지막에서야 작가가 극을 끝내며 반복하는 첫 대사는 처음의 회한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던져놓는다.

사실 이 연극의 도입부는 조금 산만하고 중복적이었다. 그리고 중반부는 진부했고, 결론 또한 어떻게 될 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식적인 면이 많았다. 그래서 작가노트는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연극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이야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창작자의 고민을 중간에 흐지부지 놓아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 간다. 연극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세 사람의 운명은 바꾸어 줄 수 있다고 믿으며 연극 속의 작가는 정말로 연극을 모시고 살았던 자신의 삶을 걸고 그 일을 이루어낸다. 그렇게 끝맺는다.

작가노트는 조금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쉽게 눈에 띄는 연극이며 구성의 성긴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처음 제시한 아이디어의 참신함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리는 것도 아쉬운 부분도 있다. ‘소녀’의 정체가 너무 늦게 드러나 버려 역할이 축소되는 것도 극의 균형을 기울게 한다. 그렇지만 요즘 드물게 자신이 하는 이야기의 무게에 대해 고민한 작품이다. 그 면에서 ‘작가노트’는 그 성긴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감동이 있다. 이야기 안에 이야기를 넣어 겹으로 무대를 짜면서 그렇게 구성한 무대가 왜 이 이야기에 필요한 것인지를 천천히 납득시켜 준다. 이야기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극 중 작가의 열망은 사실 터무니없다. 이 터무니없는 열망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 확산시켜나가는 후반부 구축으로 작가 노트는 우리에게 예술의 의미를 전달해 준다. 작가는 온 삶을 써서 후회 없이 연극을 모셨고 그래서 연극 같은 삶을 구현해 냈다는 바로 그 의미 말이다.

이 작품은 작년 대한민국 연극제 서울대회 대상 수상작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정기공연이 미루어진 작품이다. 그런 사연이 이 극 중 이야기에 대한 열망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긴 하지만 초반의 산만함과 좀 더 줄였어도 좋았을 이야기의 중복으로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주연배우인 강진휘의 유연함이 주제의 무거움을 들어 올리면서 이야기의 진심이 관객에게 닿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좋은 공연이었다. 작가를 연기한 강진휘 배우가 마지막에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았을 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노트의 작가 한민규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사진=극단 혈우)
(사진=극단 혈우)
마정화 드라마트루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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