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달 29일 12조8915억원 규모의 2023학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시의회 교육위는 교육용 스마트기기 보급·전자칠판 설치 예산을 포함, 5688억원을 삭감했다. 대신 통합교육재정안정화기금 5544억3000만원과 학교 환경 개선 비용 133억원을 증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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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조8900억원 정도의 전체 예산에서 삭감된 5688억원은 4.4%정도에 불과하지만, 매년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말이 달라진다. 인건비 약 6조7500억원(52.4%), 학교운영비 1조1501억원(8.6%), 기금전출금 등 재무활동비 1조2300억원(9.7%), 기타 약 400억(1.3%) 등 경직성 예산을 빼면 남은 돈은 시설비 1조500억원(8.0%), 교육사업비 2조6700억원(20.0%) 등 3조7200억원에 불과하다. 이 3조7200억원 중 일부는 보건·급식비 등 고정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비용도 있기에 삭감된 사업비 5688억원은 적지 않은 비중이다.
현재 서울시의회는 112석 중 76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다. 교육위 역시 13석 중 9석이 국민의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의회가 시교육청의 예산안에 제동을 건다면 시교육청 입장에선 삭감된 예산을 활용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시의회의 이번 심의·의결된 예산안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국민의힘 시의원들과 협상을 통해 일정 부분에서 타협하고 싶었지만 모두 다 삭감됐다”며 “기준도 없이 삭감하다 보니 내년 시교육청 정책이 정상 운영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삭감된 예산안 중 조 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은 ‘전자칠판 설치 사업’과 ‘교육용 스마트기기 ‘디벗’ 보급사업‘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달 15일 시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코로나 대유행 시기를 지나면서 세계 곳곳에서 교육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학생 스마트기기 디벗을 중1에서 중1~고1로 확대하고, 전자칠판 설치를 중1에서 초5~고3, 특수학교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의회 교육위가 해당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조 교육감이 추진하던 이번 사업은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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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예산안 심의·의결이라는 시의회의 권한에 따라 과도한 예산을 축소했다는 입장이다. 교육위 소속 채수지 국민의힘 시의원은 “굳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사업의 경우 심의·의결라는 시의회의 권한을 이용해 삭감했다”며 “서울교육청이 명확한 근거 없이 학교운영비를 예비비 성격으로 1억원씩 추가로 지급하는 등 예산 편성에 포퓰리즘적 성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교육감이 역점 사업으로 밀고 있는 ’디벗‘과 ’전자칠판‘ 사업 역시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고광민 국민의힘 시의원은 “디지털 교육에서 속도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방향성도 중요하다”며 “전자칠판이나 디벗의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지·보수 비용에만 몇 개월에 수억원씩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한 상태에서 시교육청은 ‘부동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의회가 불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 한 쪽 예산을 삭감했다면 다른 쪽에선 삭감한 예산만큼 증액을 해야 한다. 시교육청에 배정된 예산 총액에는 변동이 없어서다. 시의회는 예산 삭감 권한을 갖지만 다른 쪽에서 예산 증액을 하려면 시교육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의회의 증액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확정되면 부동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약 5700억원의 예산은 미집행 상태로 남아 그 피해가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청은 예산 편성 권한을, 시의회는 심의·확정 권한이 있지만 이를 남용해서는 안된다”며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