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3%대를 찍는 등 고공행진 중이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인한 수입물가, 생산자물가 급등세를 고려하면 물가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기업들이 아직까지 원가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전가하지 않고 있지만, 서서히 제품 가격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행, 방역 지침 완화에 따른 수요 증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 기업들 원가 상승 부담이 쌓인다
소비자물가는 수입물가, 생산자물가 흐름을 반영해 등락하는데 수입물가, 생산자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입물가는 원화 기준으로 9월 26.8% 상승했다. 2008년 11월 32.0% 오른 이후 12년 10개월 래 최고 수준이다. 석 달째 20% 안팎의 상승세다.
유가 급등, 원화 약세 영향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최근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올 들어 무려 55.7%나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6월 이후 우상향 흐름을 보이며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연초 이후 9% 가량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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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물가는 7~9월 7%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의 국내 출하 제품과 수입품을 포함한 국내 공급물가지수 중 원재료와 중간재는 석 달째 각각 40%대, 10%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에 비해 최종재는 석 달째 2%대 상승률에 그쳤다. 원재료, 중간재가 오른 것에 비해 최종재는 덜 오른 셈이다. 즉, 수입·생산자 물가 상승세를 고려하면 소비자물가는 덜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커질 수 있음을 시시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원재료와 중간재 상승률은 소비자 근원물가에 각각 5개월, 3개월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 원화 가치 하락 외에 항만 물류적체 등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제조업의 원자재구입가격 심리지수(BSI)는 10월 144로 연초 이후 27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제품판매가격 심리지수는 112로 16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원가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제조업의 채산성 심리지수는 85로 작년 말(86)과 큰 차이가 없었다. 기준점인 100보다 낮아 채산성이 나빠진다고 응답한 기업이 좋아진다는 기업보다 더 많았다.
항만 물류 적체가 장기화하자 운임비가 비싼 항공을 통해 제품을 들여오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운임비도 급등하고 있다. 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9월 4590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1년 전보다 230.2% 오른 데다 항공화물운임지수(TAC)도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노선 기준으로 135.7%나 급등했다. 한은 관계자는 “항공 화물의 경우 항만과 비교해 실어나를 수 있는 물량이 적고 운임비가 훨씬 비싸지만 일부 급한 경우엔 항공을 이용하면서 운송량도 증가하고 운임비도 뛰고 있다”고 말했다.
◇ 근원물가도 2%대, 5년 11개월 래 최고
앞으론 기업들의 누적된 원가 부담이 서서히 제품 가격에 전가될 조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올 들어 3월까지만 해도 0%대의 상승률을 보였으나 5~7월 1.2%를 기록하다가 8월 1.3%, 9월 1.5%, 10월 2.4%로 급등세를 보였다. 2015년 12월(2.6%) 이후 5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반면 식료품 및 에너지지수 상승률은 5월 8.0%를 찍었으나 7월 7.9%, 8월 7.7%, 9월 6.1%, 10월 5.9%로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 근원물가 급등은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농산물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농축수산물 가격이 10월에 0.2% 오르는 데 그쳤으나 그동안 급등했던 가격 부담은 가공식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공식품은 10월 3.1% 올라 2014년 11월(3.3%) 이후 6년 11개월 래 최고였다. 외식비가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하는 등 서비스 가격은 3.2% 급등했다. 서비스 상승률은 2009년 2월(3.4%) 이후 최고다.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한 만큼 개인서비스 등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물가 상승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달 12일 정기회의 의사록에서 “현재 물가 상승이 공급뿐 아니라 수요 압력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정책 판단 시 이러한 측면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며 “수요 측 요인이 생각보다 더 크다면 물가 압력이 장기화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물가가 다시 오르는 2차 파급효과가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