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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2021)는 수많은 윤진섭 중 작가인 그가, 수많은 예명 중 ‘도노’(Dono)란 이름으로 그린 드로잉이다. 마치 우리 사는 세상을 구획하듯 검고 굵은 띠로 나눠 제 각각의 풍경을 앉혔다. 밭을 가는 소와 농부도 보이고, 갓 혼례를 올린 듯한 새신랑 새신부의 한때도 보인다. 수락산·북한산이라 손으로 쓴 산세에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계절도 앉혔다. 굳이 시간을 따지지 않은, 세상사 전부를 담아냈다고 할까. 마치 자신의 일대기처럼.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서 연 기획전 ‘아트 오브 도플갱어: 윤진섭’은 타이틀 그대로 ‘도플갱어’로 살아온 그이의 세월을 회고한다. 아카이브 60여점과 드로잉 50여점을 걸고 ‘비평과 창작의 만남’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윤진섭의 ‘평범치 않은 세상’에는 한우물에 담을 수 없는 광범위한 배경이 있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학으로 석사학위를, 호주로 유학을 가선 미술사·미술비평으로 세부 전공을 바꿔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던 거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미술평론으로 당선된 이후엔 본격적인 비평가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곁길에 세운 광주비엔날레(1995),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2004), 창원조각비엔날레(2016) 등 대형 미술행사에 기획자로 참여했던 이력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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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한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장은 “전시명으로 쓴 도플갱어는 허구와 실재, 주관과 객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극복해야 하는 자아의 존재론적 숙명을 소재로 삼고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동적이고도 열린 정체성으로 미술계 안에서 다층적 활동을 펼친 윤진섭 개인의 미시적 시각에서 한국미술계의 50년 흐름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전시에 출품한 드로잉 50여점은 판매를 한다. 수익금은 한국미술인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사업에 전액 사용할 거란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