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장·차관실 문턱 낮추고 쓴소리 듣자”…인사혁신처장의 혁신 실험

최훈길 기자I 2021.04.16 05:00:00

김우호 신임 인사혁신처장, 불통 공직사회 타파 시도
‘우호적으로 듣겠다’ 집무실 앞 팻말 세워 열린 소통
‘찾아가는 업무보고’ 도입해 수직적 보고 문화 탈피
“간부들은 외부 쓴소리 듣고 국민 눈높이 봐야” 당부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누구나 들어오세요. 우호적으로 듣겠습니다.”, “편하게 들어와서 할 말 다 하세요.”

최근 인사혁신처장 집무실과 비서실 앞에 특별한 팻말이 등장했다. 답답할 때 대나무숲을 찾아 마음껏 외치듯이, ‘인사처의 대나무숲’ 처장실을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김우호(57·행시 37회) 인사처장은 “이런 시도를 쇼맨십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공직사회 장·차관실 문턱을 낮추고 싶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불통 조직문화를 수평적이고 우호적인, 소통 문화로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은 처장실 문턱을 낮추고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처장 집무실 앞에 ‘누구나 들어오세요, 우호적으로 듣겠습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설치했다. [사진=인사혁신처]
◇“쇼맨십이란 말 듣더라도 문턱 낮추고 싶다”

김 처장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소탈한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인사비서관을 맡아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공정·투명·균형인사 등 국정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인사다.

지난달 김 처장이 부임한 뒤 혁신 실험은 곳곳에서 시작됐다. 김 처장은 ‘찾아가는 업무보고’를 도입했다. 이는 부처 수장이 집무실에 앉아서 보고를 받는 게 아니라 부서를 찾아가 직원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장관 등 새로운 수장이 취임하면 집무실 앞은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했다. 보고하려는 직원들 대기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기 때문이다.

김 처장은 ‘역발상’으로 현안이 있는 부서를 직접 찾았다. 그는 지난 13일 11층 집무실을 나와 8층 사무실로 향했다. ‘찾아가는 업무보고’ 첫 번째 부서는 균형인사과로 정했다. 균형인사과는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지역인재에 대한 차별 없는 인사를 위한 국정과제를 맡고 있는 핵심 부서다.

집무실을 벗어나니 업무보고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과거에는 딱딱하게 일 얘기만 급하게 하다가 업무보고가 끝나기 일쑤였다. 김 처장은 균형인사과 직원 10여명과 일일이 인사했다. 이어 “봄날에 산뜻하게 머리를 잘랐네”,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잘 지냈나” 등 안부부터 챙기고 업무보고를 받았다.

김 처장은 “업무보고 하는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공간에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며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직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줄어드는데, 이번 찾아가는 업무보고는 여러 직원들의 안부, 근무환경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간부들이 밖으로 뛰어서 외부 쓴소리 듣자”

아울러 김 처장은 관리자급인 국·과장들에게는 “간부들이 밖으로 뛰어서 외부의 쓴소리를 듣자”고 주문했다. 국회, 언론, 학계, 다른 부처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소통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자는 제안이다. 앞서 김 처장은 취임사에서 “먼저 다가가서 언론, 국회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외부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용해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정권 말기 공직사회 내부에서 ‘소극행정’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직자들 사이에서는 “외부 사람들과 만나 편히 얘기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김 처장은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교류를 안 하면 오히려 더 행정이 위축되고 불통만 생긴다”고 했다.

그는 “과감하게 국민들을 만나서 적극적으로 알릴 건 알리고 쓴소리도 들어야 한다”며 “그렇게 부딪히면서 공직자들이 성장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처장은 국·과장들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그는 40여명의 인사처 국·과장들에게 최근 출간된 ‘멍상사 유상사’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은 중앙부처에서 30여년간 근무하고 1급으로 퇴임한 김의환 씨가 쓴 책이다. 멍상사(멍청한 상사), 유상사(유능한 상사) 비교를 통해 관리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정리했다.

김 처장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좋은 관리자는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대목이 와 닿았기 때문”이라며 “관리자는 지시·통제·압박할 게 아니라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국·과장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앞으로 인사처는 이같은 혁신 실험을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대해, 공감대를 넓힐 계획이다. 김 처장은 “2014년에 인사혁신처가 출범했을 당시 초심을 생각하며 공직사회 혁신 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인사처의 리더십이 다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공직사회의 혁신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오른쪽)이 지난 13일 인사처 균형인사과에서 ‘찾아가는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1964년생 △전북 고창 △전북 전주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 공공정책학 석사 △서울시립대 행정학 박사 △행시 37회 △대통령비서실 인사비서관 △인사혁신처 인재채용국장·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차장 △인사혁신처 처장(2021년 3월26일~) [사진=인사혁신처]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