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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국경제 '속 빈 성장'…1인당 국민총소득 4년만에 뒷걸음질

김경은 기자I 2020.03.04 00:00:00

실질GDP보다 낮은 명목GDP 성장률
채산성 악화로 기초체력 떨어져
저축률 하락…투자·수출 부진 여파
국민총처분가능소득, 98년(-1.0%) 이후 최저

사진=연합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작년 한국 경제의 채산성이 악화했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실질 GDP 성장률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갈등과 글로벌 성장 둔화라는 대외 악재에도 어렵게 2% 성장을 지키기는 했지만 벌어들인 돈은 그에 못미쳤다. 투자여력도 감소했다. 총저축이 2년 연속 뒷걸음질했다. 성장률 둔화에 저물가까지 겹친 탓이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이 나온다.

◇명목GDP 성장률 위환위기 이후 21년만 최악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2019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명목GDP는 1941조원으로 1년 전보다 1.1% 성장했다. 실질 GDP 성장률 2.0%보다 낮았고, 외환위기 이후 21년만에 가장 저조했다.

실질 GDP 성장률이 같아도 명목 GDP 성장률이 그에 비해 낮으면 경제주체가 성장을 체감하기 어렵다. 물가를 감안하면 실제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 기업 영업이익 등은 덜 늘었다는 의미여서다.

명목GDP 성장률이 이같이 낮게 나온 것은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에 그친 가운데, 수출물가(수출 디플레이터 -4.9%)가 크게 내렸다. 이에 우리나라의 포괄적인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가 1999년(-1.2%)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0.9%)를 기록했다.

박성빈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부장은 “반도체 가격이 지난해 50% 이상 하락하는 등 전반적 교역조건이 악화하면서 대외부문 가격 하락 요인에 따라 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 가까워져…“국내 소비·투자 회복돼야”

물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은 투자와 생산활동을 지연하고 이는 경제를 더 위축시키는, 이른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제 지난해 총저축은 1년 전보다 1.6% 감소하면서 2년 연속 뒷걸음질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를 줄인 여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은 1.9% 증가해 1998년(-1.0%) 이후 가장 낮았다. 투자(총자본형성) 증가율은 2년 연속 0%대를 기록하면서 부진을 이어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투자와 수출이 부진한게 주 요인”이라며 “저축률이 떨어지면 우리경제의 투자여력은 더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총저축률은 지난 2012년 34.5% 이후 7년 만에 최저인 34.6%를 기록했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국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은 디플레이션에 가깝게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작년엔 외부 변수인 수출 디플레이터가 크게 내린 것이 주 원인인 만큼 내수 디플레이터 하락세가 더 이어질지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수 디플레이터는 2017년 이후 3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며, 지난해 1.1%를 기록했다.

◇작년 4분기 저점 지나나 했더니…

그나마 지난해 4분기 국내 내수를 중심으로 회복 조짐이 나타나기는 했다. 작년 4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1.3% 성장해 속보치 대비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속보치는 2개월 자료를 반영한 것으로 최종 잠정치에는 작년 12월 자료까지 포함한다. 설비투자(1.8%포인트), 건설투자(0.7%포인트), 민간소비(0.2%포인트) 모두 상향 조정되면서 민간 성장 기여도가 0.2%포인트에서 0.4%로 상승했다.

박성빈 부장은 “지난 12월 정부 재정집행 효과뿐만 아니라 민간 내수가 좋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올해 1분기 코로나19 사태로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부진이 예상돼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다.

지난해 실질기준 민간소비는 1.9%로 2013년(1.7%) 이후 가장 낮았다. 반대로 건설투자는 -3.1%로 전년(-4.1%)에 이어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설비투자도 -7.7%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8.1%) 이후 최저였다. 수출은 1.7%로 2015년(0.2%) 이후 가장 낮았고, 수입도 -0.4%로 2009년(-7.2%) 이후 가장 최저였다.

국민들의 생활수준과 구매력을 가늠할 수 있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달러환산 기준 4년 만에 감소한 3만204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8년 12년 만에 ‘선진국 반열’인 국민소득 3만달러에 진입했지만, 낮은 경제성장률에 원화가 크게 절하(5.9% 원화가치 하락)된 영향이 컸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보통 한 나라의 국민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통한다. 지난 2006년(2만795달러) 2만달러를 처음 돌파한 뒤, 지난해 12년 만에 3만달러 고지를 밟은 바 있다. 원화 기준 1인당 GNI는 3735만6000원으로 전년보다 1.5% 상승했다.

▶용어설명

◇GDP 디플레이터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누어 사후적으로 계산하는 값이다.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 소비나 저축으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총소득으로, 명목 국민총소득(GNI)와 명목 국외순수취경상이전의 합이다.

◇국민총소득(GNI) 한나라의 국민이 국내외 생산 활동에 참가하거나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로, 자국민이 국외로부터 받은 소득(국외수취요소소득)에서 국내총생산 중에서 외국인에게 지급한 소득(국외지급요소소득)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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