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줌인] 과기계 주요 인사 잇따른 낙마 왜?

이연호 기자I 2018.08.22 05:00:00

연구계 폐쇄적 문화, 빠른 시대 변화 못 따라 가는 탓
짧은 R&D 역사에 올바른 연구 문화 미정착
연구비 관리 시스템 정비 목소리도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교수 재직 당시 연구비 유용 의혹 논란에 휩싸였던 서은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지난 20일 취임 99일 만에 결국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국내 과학기술계 주요 인사들의 잇따르는 낙마가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앞서 지난해 초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었던 박기영 교수와 박성진 벤처중소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논란 끝에 자리에서 내려 왔다. 연구계 일각에서는 짧은 국내 연구개발(R&D) 역사를 고려할 때 성장통이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자정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따르면 서은경 이사장은 20일 돌연 입장문을 내고 “과학기술문화와 과학창의인재육성 사업을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과학창의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연구비 관리와 관련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들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하지만 지난 30년간 연구자로서 연구윤리를 잘 지키며 투명하고 청렴하게 연구에 임해 왔으며 연구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음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서 이사장은 연구비 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연구비로 사익을 취할 만큼 부도덕하게 살아오지 않았다”며 “한국연구재단 감사와 관련한 추가 조사에 성실하게 임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앞서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17일 공시를 통해 ‘연구비 집행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 이사장은 전북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허위 납품서를 작성해 재료비를 집행했고 학생인건비를 공동 관리했다.

이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연구 윤리 등의 문제로 자리에서 내려온 과기계 인사는 비단 서 이사장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급 조직인 과학기술혁신본부 초대 본부장으로 임명된 박기영 순천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는 11년전 황우석 사태에 발목이 잡혀 내정 나흘만에 하차했다. 세계 과학 역사상 최악의 연구 부정 행위 중 하나로 기록된 ‘황우석 사태’에 깊이 연루된 박 본부장이 연간 20조원에 육박하는 국가 R&D 예산을 관리하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본부장은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9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 22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과학기술계가 박 후보자의 한국창조과학회 국제위원장·이사 활동을 문제삼으며 낙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창조과학은 기독교 근본주의 종교운동으로 과학기술인들은 현대과학이 반지성·비과학으로 분류하는 창조론을 믿는 인사가 국무위원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촉발했다.

국립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손상혁 총장은 연구비 부당집행 의혹 등의 투서를 바탕으로 한 달 넘게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과기계 주요 기관 수장들의 잇따른 사임에 대해 연구계의 폐쇄적 문화가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빠른 시대 변화 속도에 변화에 더딘 연구계 문화가 제때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류영대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총괄실장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의식 없이 행해진 일부 연구계의 행태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류 실장은 연구계의 자정노력이 있어야겠지만 기초연구 지원 확대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류 실장은 “수 백년의 R&D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도 공히 초창기에는 이 같은 문제들을 겪으며 발전해 왔다”며 “연구계 스스로 자정노력이 있어야 겠지만 기초연구 지원 확대라는 기조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계 일각에서는 복잡한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사용처를 미리 정한 곳에만 쓸 수 있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실제 연구 현장에서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관행에 기댄 연구계의 안일한 연구비 집행도 문제지만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손질할 필요도 있다”고 언급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