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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위틈 비집고 봄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강경록 기자I 2018.04.13 00:00:01

강원도 정선 봄꽃 여행
동강 절벽 아래 동강할미꽃 꽃망울 터뜨려
국내 최초 테마형 동굴 '화암동굴'
정선 사람에 가장 귀중한 나물 '곤드레'

비에 촉촉히 젖은 동강할미꽃이 절벽 사이 바위 틈으로 꽃망울을 터뜨렸다


[강원도 정선=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강원도 정선 동강. 그 옛날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한양까지 띄워 보냈던 아우라지 떼꾼들의 정선아리랑이 구성지게 울려 퍼지던 물길이다. 옥색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정선에서 영월까지 구절양장 51km를 흐르는 동강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직 절벽 바위에 동강할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유난히 길고 혹독했던 겨울 탓에 늦은 개화지만, 그 자태만큼은 더욱 황홀하다. 이 멋진 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강원도 정선의 귤암마을로 향한다. 귤암마을은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동강할미꽃 자생지다.

물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동강 전경


◇가파른 절벽을 뚫고 나온 봄 손님

강원도 정선 귤암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빠져나와 꼬불꼬불한 동강변 도로를 한참 달려야 한다. 길 주변에는 여기저기 ‘낙석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험난한 길이다. 이렇게 절벽을 맞닿은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도로변에 ‘동강할미꽃 군락지’라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동강할미꽃을 만나는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강할미꽃은 장미나 튤립처럼 꽃밭을 한가지 색으로 채우며 흐드러진 꽃이 아니다. 동강할미꽃의 꽃밭은 동강의 가파른 회색 뼈대, 즉 절벽이다. 바위벽을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찾아야 그 틈에서 손을 들고 있는 보랏빛 꽃을 만날 수 있다. 동강 봄 손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할미꽃 자체는 꽃보다 열매의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흰 수염이 늘어진 열매 덩어리가 할머니의 하얀 머리 같기 때문이다. 동강할미꽃은 고개를 숙이는 일반 할미꽃과 달리 특이하게도 하늘을 보고 꽃을 틔운다. 봄이면 흑갈색 뿌리에서 잎이 무더기로 나와 비스듬히 퍼지면, 하나의 줄기에 3~7개의 작은 잎으로 꽃이 핀다. 꽃은 자주색·홍자색·분홍색·흰색 등으로 다양하다. 겉에 흰 털이 빽빽하다.

비에 촉촉히 젖은 동강할미꽃이 절벽 사이 바위 틈으로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찔한 절벽에 자태 고운 동강할미꽃이 보석처럼 박혔으니 그야말로 절경이다. 봄비까지 적셔주니 그 모습이 더 처량하고, 신비하다.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운 가파른 바위벽에 이 여리디여린 꽃이 뚫고 올라왔다는데 놀란다. 여기에 겨울이 남기고 간 스산함에서도 꽃을 피워낸 존재가 동강할미꽃뿐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강인함과 생명력이 더 주목받긴 하지만 동강할미꽃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다. 겨울 잔재 속에서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보랏빛은 봄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장미의 붉은색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함께 있는 동강고랭이도 동강할미꽃만큼 귀한 식물이다. 동강고랭이는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암수 구분이 선명대 더욱 돋보인다. 지나간 해에 죽은 잎이 바위에 수염처럼 축축 처져 있는 가운데 초록의 새잎이 올라 노랗고 하얀 꽃을 피운다. 노란빛은 수꽃이고, 하얀색은 암꽃이다. 동강고랭이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종이다.

화암동굴


◇국내 최초의 테마형 동굴 ‘화암동굴’

용탄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동강 변으로 이어진다.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병방치가 눈에 들어온다. 정선 읍내로 가자면 저 고개를 넘어야 했다니 오지마을의 삶이 그 높이를 가뿐히 넘어선다. 옛사람들의 걸음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강변길에는 갈대숲과 어우러진 모래밭이며 반짝이는 바위들이 봄 풍광에 온기를 더한다. 조양강이라 불리던 물길이 이곳에서 동강
화암동굴
이란 이름을 얻고 영월을 향해 나아간다.

운전대를 돌려 금광의 흔적을 좇아 화암면으로 향한다. 정선 읍내로 이어지는 어천을 따라 도로가 나란히 이어진다. 흔히 ‘정선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몰운대·화표주·화암약수 등 화암8경이 펼쳐진다. 그중 화암동굴은 ‘금과 대자연의 만남’을 주제로 조성한 국내 최초 테마형 동굴이다. 이 동굴이 주목받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다. 노다지를 캐던 금광과 석회암 동굴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테마형 동굴이어서 교육적 가치도 크다. 가족 단위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보통 화암동굴 입구까지 모노레일 카를 이용해 올라간다. 동굴에 들어서면 이 동굴이 금광이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높이와 폭이 2m쯤 널찍해 보이는 갱도가 나온다.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여기서부터 500여m 구간에는 금광맥의 발견부터 채취까지 전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상부 갱도에서 하부 갱도로 내려가는 길은 수직으로 90m로, 철제 계단이 365개를 설치했다. 가끔 나타나는 ‘호랑이 얼굴’ 등 각종 석회석 생성물과 종유석을 볼 수 있다. 또 하부 갱도를 반쯤 지나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인 ‘동화의 나라’가 나온다. 화암동굴 캐릭터인 금깨비와 은깨비를 이용해서 금광 개발과 금의 가치 등을 동화로 표현해 놓았다.

천연 동굴은 화암동굴 맨 끄트머리에 나온다. 약 2800㎡의 대광장에는 높이가 28m에 이르는 동양 최대 규모의 유석폭포를 비롯해서 마리아상·잣송이·장군석 등 다양한 형태의 종유석 생성물을 볼 수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는 곤드레를 비롯해 산나물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정선 사람들에게는 밥이었던 나물 ‘곤드레’

“한치 뒷산의 곤드레·딱주기, 마지메 맛만 같으면/고것만 뜯어다 먹으면 한해 봄 살아난다.”

곤드레 비빔밥


정선 아라리 ‘부부’ 편의 한 대목이다. 곤드레·딱주기 모두 정선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산나무들. 특히 곤드레나물은 해발 700m 이상, 청정한 고산지대에서만 자라기에 우리나라에선 정선·평창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정선은 논이 극히 적다. 먹을 것이 별로 없었고, 봄이면 산에서 나는 나물에 기대어 살았다. 그중 곤드레는 정선 사람들에게 가장 귀중한 나물이었다.

얼핏 보면 취나물 비슷하지만 털이 억세지 않고 매끄럽다. 씹으면 야들야들하다. 삶아서 소쿠리에 담긴 곤드레 더미에선 비를 흠뻑 맞은 소나무 숲의 향기가 묻어난다.

‘왜 하필 이름이 곤드레 일까?’. 정확한 어원은 밝혀진 바 없다. 일부에서는 곤드레는 ‘술에 취해 정신을 놓은 상태’를 이르는 곤드레만드레와 관련이 있는 단어로 흔히 오해한다. 곤드레의 옛 형태는 곤들레일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도 곤들레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민들레나 둥굴레와 같은 계열의 식물 이름이다.

평생 산촌에서 살면서 나물을 뜯어 먹으며 살았던 정선의 할머니들은 식용 식물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고 부른다. 그러나 먹을 수 없는 식물의 이름은 모른다. 나물에 섞여 들어온 그 흔한 쇠뜨기를 골라내면서도 그 이름은 그냥 ‘잡풀’인 것이다. 곤드레는 나물 중에서도 강원도에서 가장 흔히 먹었던 식물이다. 강원도 산야에서 많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밥이나 죽, 국으로 먹기에 더없이 좋기 때문이다. 보통의 산나물은 맵거나 톡 쏘는 휘발성의 향이 있어 가끔 기호 음식으로는 먹을 만하나 매 끼니 먹을 수 없는데, 이 곤드레는 삼시 세끼 몇 달을 먹어도 탈 나거나 질리는 일이 없다. 이 곤드레라는 이름에는 이 나물로 보릿고개를 버티며 살다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의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


◇여행메모

△가는길=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 IC로 빠져나와 영월 방면으로 차를 달린다. 영월을 지나 정선의 남쪽 입구인 남면에서 59번 국도를 따라가면 정선 읍내로 들어설 수 있다.

△잠잘곳= 북평면 숙암리에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가 새로 문을 열었다. 가리왕산과 두타산 사이, 그 옆으로 오대천이 흐르는 아늑한 공간에 자리 잡았다. 숙암리는 옛 맥국 갈왕이 고된 전쟁을 피해 머물렀던 곳으로, 암석 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숙면을 취했다 해 이름 붙은 곳이다. 건강한 에너지를 깨울 수 있는 힐링의 최적지가 바로 이곳이다. 파크로쉬는 고품격웰니스 리조트다. 숙면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전 객실에 에이스침대와 협업해 개발한 매트리스를 배치했다. 여기에 매일 4개의 웰니스 프로그램과 이용객의 요청에 따라 프라이빗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숙면, 스트레스 관리, 활력 강화, 다이어트, 자세 교정 등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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