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건(63) 동아알루미늄 대표가 지난 1988년 처음으로 만든 알루미늄 텐트 폴 제품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업하러 찾아간 한 텐트 제조업체 관계자로부터 들은 비웃음이다. 텐트 제조업체는 강하고 탄력이 우수한 경쟁사 제품을 밥맛이 뛰어난 아까비리에, 거칠고 완성도가 떨어진 동아알루미늄 제품을 거친 밥맛으로 인식되던 통일벼로 각각 비유한 것이다.
이 치욕스런 첫 경험은 ‘차별화된 제품력’으로 반드시 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그의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30년이 지난 오늘 그 각오는 현실이 됐다. 동아알루미늄은 세계 알루미늄 텐트 폴 시장 90% 이상을 점유하며 이 분야 절대적인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사실상 프리미엄 알루미늄 텐트 폴을 사용하는 텐트 제조업체들은 모두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노스페이스, 빅 아그네스,MSR,REI,힐레버그,몽벨 등 세계적 텐트 업체 20여개사가 주요 거래처다. 최근에는 한국군이 사용하는 20인용 텐트와 미육군 텐트 등에도 이 회사 알루미늄 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판매한 텐트 폴은 70만동을 넘어선다.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유학시절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세계적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미래를 고민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이 제조업이었다. 그 중에서 평소 관심이 있던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확신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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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98년에 내놓은 페더라이트(Featherlite) 신모델은 그때까지 세계 고급 텐트폴 시장을 독점하던 이스턴사를 단숨에 밀어내며 동아알루미늄을 절대강자의 반석에 올려놓았다.탄력이나 강성은 경쟁사 제품과 같으면서 무게를 18%나 가볍게 만든게 시장에서 먹혀들어간 것. 이 제품이 시장에서 히트하면서 그전까지 이 시장을 독식하던 이스턴사는 결국 알루미늄 폴 사업에서 마이너리그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알루미늄 폴은 텐트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지만 자체 브랜드가 없어 텐트 제조업체에 납품하는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그러다보니 대부분 폴 업체는 텐트 제조사 요구만 맞추는데 급급하고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처음부터 최종 텐트 소비자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제품을 개발해왔다.”
라 대표는 비록 텐트 부품 제조업체지만 최종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제품을 개발하다보니 알루미늄 폴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고 비결을 소개했다. 그는 실제로 틈나는 대로 텐트 판매매장을 찾아가 소비자들의 구매행태를 현장에서 체크한다. 대표가 솔선수범하니 여타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소비자 시장조사를 정기적인 주요 업무로 실행한다. 이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는 경쟁사보다 더욱 가볍고 탄성은 강한 텐트 폴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됐고, 이를 반영한 신제품들을 내놓은게 잇단 히트로 이어졌다.
“부품 제조사지만 텐트제조사나 텐트 유통업체보다 소비자 니즈를 더 정확히 꿰뚫고 있다보니 동아알루미늄은 이들에게 텐트 구조설계까지 제안하며 완제품 개발을 리드하고 있다. 텐트 구조설계를 제대로 하려면 소비자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고 무슨 기능을 원하는 지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할수 없는 일이다.”
그는 텐트제조업계에서 텐트 구조설계에 관한한 최고 경지에 달했다는 의미에서 ‘구루(Guru)’로 통한다. 실제 라 대표가 지금까지 직접 손으로 설계해 개발한 텐트 구조만 지난 30년동안 1000여 동이 넘어선다. 메이저 텐트 제조업체라도 많아야 1년에 텐트 구조설계를 3~4동 정도밖에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기적적인’ 수치다. 요컨대 대형 텐트 업체가 300년동안 할 텐트 구조 개발량을 라 대표는 30년만에 해치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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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알루미늄 폴 제품의 차별화는 전문화된 기술력에서 나온다.폴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고 탄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뒷받침되고 있기에 시장의 절대강자 자리를 유지할수 있다.”
라 대표는 동아알루미늄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체 기술연구소와 풍동실험실을 꼽았다. 두가지 모두 텐트 폴 업체로는 세계 최초이자 지금도 유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창업 전부터 운영해온 기술연구소에서는 텐트 폴과 텐트에 필요한 설비개발을 병행하며 기술력을 축적해오고 있다. 6명의 전문 연구원을 두고 있다. 얼마전까지 라 대표의 처남이자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준호 KAIST 교수가 자문연구원으로 함께 연구를 해왔다. 최근들어 오 교수는 로봇개발 업무량이 많아져 그전처럼 공동연구를 할 시간이 크게 줄었지만 지금도 굵직한 사안은 자문을 마다하지 않는다.
2012년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세계 최초로 20여억원을 들여 자체 기술로 개발한 풍동실험실도 동아알루미늄의 기술중시 기업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이 곳에서는 500마력 터빈을 돌려 초속45m, 시속 162km 바람을 만들어내 텐트 폴과 텐트의 강성 실험을 할수 있다. 라 대표는 하루 1천만원 가량 소요되는 비싼 실험에도 이 실험실을 업계에 무료로 개방하는 결단을 내려 업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누구보다 가볍고 탄성있는 알루미늄 튜브 제조 분야가 저희가 가지고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라 대표는 이미 ‘헬리녹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초경량체어, 테이블,야전침대를 세계 시장에 내놓으며 사업 다각화 전략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야전침대는 2kg 내외로 가벼우면서 톡 치면 북소리가 날 정도로 장력이 탁월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헬리녹스는 라 대표의 아들인 라영환 대표가 이끌면서 대를 이어 사세를 키워 나가고 있다.
□라제건 대표는
◇1978년 연세대 역사학과 졸업 ◇1982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4년 미국 미시간대(앤아버) MBA ◇1986년 동아무역 기획실장 ◇1988년 동아알루미늄 창업 ◇2013년 헬리녹스 설립 ◇2015년 각당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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