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주식하는 국민' 원한다는데…

오현주 기자I 2018.02.07 00:12:00

중독성·판타지 등 도박 가깝지만
주식위험 환기시키는 조치 전무
''경제 치적=주가'' 직결되기 때문
집값·분양제·신용등급 등 추적해
''관행된 사기'' 국가 두 얼굴 고발
…………
국가의 사기
우석훈|384쪽|김영사

‘국가가 나에게 사기를 친다!’ 이 뼈아픈 전제가 책의 문제제기다. 저자 우석훈은 주식·집값·교육·다단계·신용등급 등 개인의 실생활과 연관된 사회문제를 앞세우고, 이념·모피아·토건족·4대강·분양제 같은 수십조 단위의 기간사업을 추적하며 국가의 이중성을 낱낱이 고발해댄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혹시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요즘에는 차라리 가상화폐로 얘기를 푸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개인이 감당하기에 위험한 거래를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투자를 감당하기에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폐해를 감당하기에 위험하다는 거다. 중독성도 강하고 판타지도 강하고. 그렇다고 주식을 게임이려니 한다? 상한액 없이 큰돈을 움직이는 패턴으로 본다면 차라리 도박에 가까울 텐데.

그런데 말이다. 사행성 오락은 물론 도박까지 ‘병’이라며 고쳐야 한다는 국가가 주식투자에선 입을 다문다. 왜? 모든 정권은 집권기에 주가 그래프가 삐죽삐죽 올라가주길 바라니까. 경제적 치적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수치가 주가종합지수니까. GDP니 GNP보다 더 직관적이고 감각적이지 않은가. 분기별로 네 번 정도 나오는 국민소득추정치는 와 닿질 않는다. 대신 주가는 매일 매시간 요동을 쳐준다. 좀 다이내믹해야지. 증시가 나른한 춤을 추는 게 싫은 정부는 개인에게 주식투자를 자꾸 찌른다. 조심하란 지적은 좀처럼 없다. 누군가 폭삭 주저앉는 파산을 당해도 어차피 국가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

‘국가가 주식을 무기로 나에게 사기를 친다!’ 이 뼈아픈 전제가 책의 문제제기다. 주식은 물론 집값·교육·다단계·신용등급 등 개인의 실생활과 연관된 사회문제를 앞세우고, 이념·모피아·토건족·4대강·분양제 같은 수십조 단위의 기간사업을 추적하며 국가의 이중성을 낱낱이 고발해댄다. 그간 환경과 경제 두 주제에 몰입해온 저자가 나섰다. 아예 ‘국가의 거짓말을 추적한 최초의 사회경제학 보고서’란 타이틀까지 걸었다. 미래사회로 나아가는 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 5만 시대로 가는 데 걸리적거리는 요소를 따져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당장 해결은 못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통점은 하나다. ‘설마 그럴까’ 했던 일이란 것. 모두 혹은 많은 사람들이 집단최면에 걸리듯 속아 넘어간 일이란 거다. 긴 시간이어서 가능했단다. 희박한 확률을 100%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국가 정책의 두 얼굴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닉스 미국 대통령은 1971년 금태환 정지를 전격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달러는 그 가치만큼 금을 주는 태환화폐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제부턴 안 바꿔준다니까”라고 한 것이다. 만약 개인이었다면 사기죄에 걸릴 ‘짓’을 국가를 등에 업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벌였다. 결과는 어찌 됐을까. 아무도 토를 못 달고 그냥 ‘안 바꾸는 걸로’.

이 정도쯤은 ‘새 발의 피’라는 게 책의 역설이다. 주식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주식투자가 늘어나면 가장 좋아할 곳은 국가고 다음은 기업이다. 전체적으로 지수가 상승하면 투자는 물론이고 은행대출 조건도 좋아지니 개인에게도 나쁠 건 없다고 한다. 국가나 기업이 국민에게 주식을 더 사라고 유도할 충분조건을 갖춘 셈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에게 주식 사주는 것을 경제교육이라고 하겠느냐는 거다.

그런데 폐해는? 알코올·도박·마약·게임 등 흔히 4대 중독이란 것과 비교해 봐도 과도한 주식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다. 그나마 4대 중독은 ‘자제하자’는 공익광고라도 하지만 주식은 어디 그러더냐고. 주식이 다른 중독과 다른 점은 딱 한 가지란다. 정부의 은근한 협조를 얻는 거다. 그러니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모든 사기가 그렇겠지만, 특히 국가가 사기를 치면 국민은 별도리가 없다. 두 가지다. 순식간에 말려들거나 서서히 말려들거나.

△존재 자체가 사기인 ‘선분양·분양권’

‘존재 자체가 사기’라고 대놓고 몰아붙인 경우도 있다. 민간회사가 저가로 아파트를 공급할 때 생기는 손실을 보완해주는 ‘선분양과 분양권’이란 거다. 사실상 부동산문제의 기원인 건데. 우선 ‘분양’이란 말에 주목해야 한단다. ‘나눠주다’처럼 마치 베푸는 듯한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저 돈을 받고 집을 파는 매매 행위일 뿐인데. 1973년 만들어질 때부터 기상천외했다. 모델하우스만 살짝 보여주고 소비자에게서 무차별로 돈을 거둬들이는 방식이니.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정권’이란 사기극의 클라이맥스로는 1977년 처음 등장한 ‘국민주택청약부금’을 꼽는다. 청약저축제도가 시작되며 아파트는 정말로 매매가 아닌 국가가 주는 수혜가 돼버렸으니까. ‘부양가족이 있는 무주택 세대주’에다가 우선순위·추첨까지 결합한 형태. 분양받은 아파트는 정권이 국민에게 나눠주는 축복이 됐다는 얘기다.

사기는 분명하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사기고 어디서부터 아닌지를 판명하기 어려운 게 더 큰 문제란다. 사기 말고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단다. 집이 없는 서민에게 집 한 채씩 주겠다? 정반대다. 집이 없어도 살아가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거란다.

△국가가 치는 사기는 관행이 돼

역사 이래 최대 사기극으로는 ‘4대강 사업’을 꼽는다. 대부분 가족회사로 운영하는 ‘버스 준공영제’를 두곤 ‘영원히 죽지 않는 기업의 탄생’이라고 비꼰다. 자유시장경제니 신자유주의니 하며 ‘경제가 이념이 된’ 어이없는 현실도 있다고 했다. 한국 부동산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된 서울 강남이 가진 문화적 가치는 ‘0원’이란 얘기도 거침없다. 분양에서 재건축으로 이어지는 강남모델에는 세월이 가도 쌓이는 게 없단 소리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관행이 된다.” 어째서? 한번 자리를 잡으면 개선은 아주 힘든 과업이 되어서다. 그러니 해결책은 나왔다. 국가의 사기시스템을 해체하는 거란다. ‘사기 없는 나라 만들기’의 마지막 퍼즐은 전문가의 비밀주의를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라고도 했다. 청와대나 장관실에 쭈그리고 앉아 꾸미는 일들을 정직하게 만들어준다고. 예나 지금이나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사회가 더 건강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라고.

독설가처럼 거침없이 뱉어낸 사례가 한 보따리다. 타깃은 분명하고, 꼬투리잡기는 피부에 착 들러붙을 만큼 현실적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에선 막연해졌다. 버럭 화를 내고 그냥 나가버린 모양새다. 이래저래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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