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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일선경찰서에서 계약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50대 A씨는 “각종 허드렛일에 동원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일부 경찰들은 개인 옷과 이불 빨래까지 떠맡겼다”고 말했다. A씨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로 이같은 부당대우를 감수한 채 2년 넘게 이 곳에서 일했지만 최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세탁 등 환경미화원의 업무가 아닌 일은 별도로 인력을 채용해야 하지만, 일선 경찰서에서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환경미화원에게 개인 빨래, 화단 정리 등 각종 잡무까지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물의를 빚고 있다. 사회 전반의 갑질 척결을 앞세운 경찰이 조직내 갑질에는 눈감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철성 청장 ‘갑질 척결’ 선언…내부선 갑질 만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전 부처에 ‘갑질’ 근절을 지시하면서 경찰 역시 총경급 이상 부속실 의무경찰의 운전업무를 폐지키로 하는 등 정부 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계약 연장을 무기로 계약직 근로자들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차별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월 평균 126만원 정도(세후 기준)인 급여를 제때 받지 못할 때가 허다하고 연장 근무와 야근·휴일 근무 수당 등 각종 수당은 ‘그림의 떡’이라는 게 경찰 내 비정규직(기간제·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3년 10월 마련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 및 수당, 처우에 차별을 두는 관행을 금지하고 있다.
불만이 있어도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11년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경찰청공무직노동조합’(경공노)이 꾸려졌지만 노조 가입률은 작년 말 기준 고작 6%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운 털이 박히면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몰라 노조 가입 자체를 꺼린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이들을 담당하는 일선서 경무과에서 수시로 노조 가입 여부를 확인한다는 게 경공노 측의 주장이다. 경공노 관계자는 “노조 가입 여부와 관계 없는 협의회 참석조차도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찰병원 진료시 진료비 감면 혜택 등 그동안 노골적으로 이뤄졌던 차별도 경공노 측 청원으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뒤에야 개선됐다. 경공노는 최근 비정규직들도 일반 공무원과 차별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경찰청, 경찰병원 등과 ‘경찰병원 수가 규칙’을 내년 8월까지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경공노, ‘갑질’ 관행 인권위 진정… 실태조사도 병행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경찰 내 비정규직 ‘갑질’ 악습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근무 실태와 문제점 파악부터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경민 경공노 위원장은 “경찰청이 아닌 일선서가 직접 채용해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보니 구체적인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가 근무하는 일선서 관계자는 “처우나 근무 부분에 있어 (부당 지시 등)문제점이 있는지 추가로 확인을 해 보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A씨가 2년 이상 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한 것은 비정규직법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간제 근무) 2년이 넘어도 고령자(만 57세 이상)나 특수 계약 조건으로 채용한 경우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ㅇ노무법인 비전 소속 이상미 노무사는 “특정 목적으로 채용을 했더라도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의 업무로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공노는 비정규직을 상대로 한 ‘갑질’ 관행과 관련, 조만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방침이다. 아울러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경찰청 비정규직 실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경공노 측은 전국 250개 일선서 등 경찰 조직에서 근무 중인 비정규직은 2015년 기준 총 2700명선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