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영화서 배우는 자기성찰…스톤, 경주, 하이힐

문화부 기자I 2014.07.08 07:05:00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현대인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위해 세상에 나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회의할 때가 잦다. 물론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열심히 산다. 하지만 자신이 정작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은 없다. 남을 위해 열심히 사는 자신이 정작 누구인지를 안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마지막에 어떤 자세로 그 죽음을 받아들이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스톤’은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다. 주인공인 청년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내기 바둑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 바닥에선 천재 소리를 듣는 그에게 어느날 조폭 두목이 찾아온다. 두목은 청년에게 바둑을 지도받으며 점점 빠져들지만 청년은 건달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 곧잘 주먹을 휘두른다. 두목은 청년에게 충고한다. 잘할 줄 아는 것 하나만을 파야지 어설프게 두 세계를 넘나들지 말라고. 바둑에 심취하면서 두목은 잔인한 성격 대신에 남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를 틈타 수하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두목은 목숨을 잃는다. 두목은 웃으며 편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청년은 바둑에만 몰두하게 된다.

두목은 바둑을 통해 성정이 순화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너무 헛되이 살아왔음을 느낀 것이다. 이제라도 바르게 세상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바둑을 핑계 삼아 용기를 내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쌓아왔던 세계를 허물고 다른 세계로 도피할 수 있던 그는 죽음조차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주’는 중국에 사는 정치학자가 친한 선배의 장례식에 왔다가 오래 전 그 형과 갔던 경주의 찻집을 찾아가는 얘기를 그린 영화다. 학자는 죽은 형과의 사이를 추억하게 되고 자신과 선배가 실은 서로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던 학자는 현재 아내와의 삶이 거짓이라고 느낀다. 정치학자로서의 삶도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 큰 정치를 말한다는 게 위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이힐’은 가장 용감하고 남성적인 강력반 형사가 여성으로 변하려는 노력을 담은 영화다. 어려서 형사의 성향은 여성이었다. 그런 그에게 동급생 남자아이가 죽고 말았다. 같이 따라 죽지 못한 그에게 여성으로의 전환은 평생의 한이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직업이 형사인 데다 가장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조폭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힐을 신고 길을 나서지만 결국 벗어던지고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동성애만을 주장하는 게 영화의 본질은 아니다. 동성애를 허용한다는 사실은 종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해졌음을 증명하는 것일 게다.

최근 개봉된 한국영화 가운데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보여준다. 사회가 변하기 위해 인간이 변해야 함을 역설한다. 자신의 살아온 삶이 위선의 그물망에 얽매여 있음을 바로 봐야 한다. 한국인들은 더욱 깊이 자신을 성찰하려 노력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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