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올해 전세시장은 영 딴판이다. 중개업소마다 대기 번호표를 만들 만큼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 전셋집을 구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세입자의 초조함과 불안감이 작용한 탓이다. 전세시장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전세시장의 불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잇단 시장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시장 불안이 3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장기간 가격 상승은 수급이 꼬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즉, 전세 공급이 모자라고(공급 부족), 전세 수요가 지나치게 넘치는(수요 초과) 엇박자로 전세시장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요즘 전세 공급자인 집주인에게 전세는 애물단지다. 전세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맡겨도 수익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집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세를 월세로 돌려 주택의 실질가치 하락분을 보전하려는 보상심리가 생겨난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수익률이 적어도 연 6%는 된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6월 기준 연 2.63%)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어찌 보면 월세 전환은 집주인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세입자들이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 앉으려는 모습에서는 ‘무리짓기’ 현상이 엿보인다. 집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집단적인 두려움이 주택 구매를 꺼리는 주요 원인이다. 집이 안락한 삶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투자재로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도 전세 눌러앉기 수요를 부채질한다.
전세 선호현상은 극도의 위험 회피 심리이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서 기인한다. ‘전세살이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전셋값이 많이 오르면서 세입자들이 이미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래서 빚을 더 내어서 집을 사려고 해도 상환능력이 여의치 않다. 이미 대출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렌트푸어 입장에서는 전셋값이 올라도 매매 수요로 전환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정부가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 등 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대책의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수요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전세는 쌀이나 김치 같은 생필품처럼 수요를 조절하기 어렵다. 전세 수요는 가격의 변화에 비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6개월 뒤에 전셋값이 떨어진다고 길에서 텐트치고 자면서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전세자금 대출 확대 같은 임시방편은 오히려 전셋값을 더 올려놓는 부작용도 뒤따른다. 전세자금 지원은 비싼 전세를 구매할 수 있는 유효수요를 늘리기 때문이다.
전세 문제는 단박에 풀기 힘든 난제다. 현재의 전세시장 불안은 주택 임대차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구 고령화, 저금리, 저성장 등 거시환경 요인까지 겹치다보니 전세난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세난은 결국 주택의 월세화를 재촉한다. 임대차 형식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많아진다는 것, 세입자의 부(富)가 집주인으로 이전된다는 의미이다.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전세로 내놓은 집주인에게 메리트를 듬뿍 줘야 한다. 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시중에 유통되는 전세물량이 늘어난다. 지금은 전세 놓은 사람이 칭송받는 시대가 아닌가. 대신 ‘과세의 사각지대’인 월세에 대해서는 투명한 과세가 뒤따라야 한다.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분산될 수 있도록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공부분에서도 저렴한 전세 공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짓는 행복주택은 월세 중심인데, 전세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전세난의 수위를 낮추고 월세화 속도도 늦추는 완충 장치가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