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들으면 보입니다 "장애 예술인 아닌 예술인"

장병호 기자I 2024.04.08 05:45:00

피아니스트 배성연·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13일 국립극장 무장애 공연 ''함께, 봄'' 출연
전 악장 연주…장애 아닌 ''예술''에 초점
"최선 다하는 연주자" "음악 통한 소통" 꿈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저는 ‘장애 예술인’이라는 표현을 ‘극혐’(매우 싫어한다는 의미의 신조어)해요.”

지난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28)의 말이다. 최근 공연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장애 예술인 공연에 대한 비판이다. 김지선은 “연주자는 연주자일 뿐 ‘장애’라는 타이틀을 굳이 강조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왼쪽)과 피아니스트 배성연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각각 시각장애, 발달장애를 지닌 두 연주자는 오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2024 함께, 봄’에서 음악 비전공자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와 함께 전 악장 연주에 처음 도전한다. (사진=방인권 기자)
김지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과정과 예술사과정을 나온 뒤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 맨해튼 음악대학 기악과에 입학해 석사 과정을 마친 연주자다. 전국동아음악콩쿠르 최우수상, 이화경향콩쿠르 입상 등으로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다.

장애 예술인 공연은 그 초점이 ‘예술’보다 ‘장애’에 놓여 있다. 오케스트라 공연의 경우 장애 연주자가 협주곡의 일부 악장만 협연하는 이벤트 성격의 공연이 많다. 김지선은 “장애인 공연이라고 성의 없이 준비하는 때도 있고, 눈물을 쥐어짜는 콘셉트로 장애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공연도 자주 봤다”며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똑같은 사람의 연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선의 말처럼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예술’에 초점을 맞춘 공연이 오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국립극장이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로 선보이는 기획공연 ‘2024 함께, 봄’이다. 이번 공연은 장애·비장애의 구분은 물론 음악 전공자·비전공자의 경계도 허문다. 음악 비전공자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온 지휘자 금난새가 무대를 이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왼쪽)과 피아니스트 배성연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각각 시각장애, 발달장애를 지닌 두 연주자는 오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2024 함께, 봄’에서 음악 비전공자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와 함께 전 악장 연주에 처음 도전한다. (사진=방인권 기자)
김지선과 함께 발달장애 피아니스트 배성연(29)이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배성연은 발달장애인 최초로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연주자다.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전체 대상, 전국학생음악경진대회 피아노 부문 대상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실력가다. 서울예고 재학 시절 교장 선생님이었던 금난새 지휘자와 오랜만에 재회한다. 배성연은 “금난새 선생님과 다시 만나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지선, 배성연은 이번 공연에서 협주곡 전 악장 연주에 처음 도전한다. 김지선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Op.64), 배성연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K.488)를 각각 연주한다.

김지선은 중학교 2학년 때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배웠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한국 바이올린의 대모’ 김남윤 한예종 명예교수가 당시 선생님이었다. 김지선은 “선생님은 진도를 빨리 나가는 편인데,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중요하다며 6~7개월에 걸쳐 오랫동안 가르쳐주셨다”며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연습을 도와달라며 찾아갔을 것이다.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배성연은 서울대 재학 시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전 악장을 연습곡으로 접했다. 배성연은 “너무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 강선옥씨는 “성연이가 전 악장 연주는 처음이라 아직은 긴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서서히 적응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연주자는 앞으로도 당당한 예술가로 활동을 이어간다. 김지선은 “음정·박자·테크닉을 잘 소화하는 연주자는 많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나만의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치유와 회복을 전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강선옥씨는 “성연이의 뒤를 이어 발달장애를 지닌 연주자 후배들이 서울예고, 서울대를 다니고 있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가 되는 게 성연이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왼쪽)과 피아니스트 배성연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각각 시각장애, 발달장애를 지닌 두 연주자는 오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2024 함께, 봄’에서 음악 비전공자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와 함께 전 악장 연주에 처음 도전한다. (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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