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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여야 공감대에도 전문가 ‘회의적 시선’

박기주 기자I 2022.03.03 06:00:00

[대선공약검증단] 정치개혁 분야①
李, 대통령 4년 중임제·책임총리제 등 공약
尹, 청와대 해체·총리 및 장관 자율성 강화 공약
전문가들 "중임제 개헌·청와대 해체, 실현 가능성 낮다"
"책임총리제 위해 제도 개선 먼저"

[이데일리 박기주 송주오 기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의 개선은 1987년 개헌 이후 30여년 간 줄곧 제기돼 온 정치 개혁의 핵심 의제다. 임기 후 법정행과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맞은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는 현 제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들이 내세운 공약을 검토한 이데일리 대선 공약 검증단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당선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李, 좋아 보이는 공약 다 포함…선거 막바지 정치적 고려도”

현재 정치 개혁의 목소리를 가장 높이고 있는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이 후보의 정치 개혁 공약을 살펴보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추진(대통령 임기 4년의 중임제 도입) △책임 총리제 실질적 운영 추진(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비례대표 확대 △위성정당 금지 등을 담고 있다.

국무총리에게 각료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행정에 대한 총리의 장악력을 강화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을 통해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치를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특히 책임 총리제와 비례대표 확대, `위성 정당` 금지,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공약은 거대 양당 위주의 정치에서 소외된 정의당과 국민의당 등 소수 정당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 성격이 강하다.

전문가들 역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임동욱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은 “중임제 개헌 등 좋아 보이는 공약은 다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약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공(空) 약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헌은 역대 대통령이 계속 제기해 왔지만 정치의 블랙홀 외에 다른 실익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던 것으로 새로운 것이 적은데다, 공약의 실현성이 어려워 보인다”며 “특히 선거 막바지 정치적 고려 속에 제기된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그간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에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준(準) 연동현 비례대표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위성 정당` 창당으로 제도 취지를 무색케 했다는 `원죄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민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은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 수로 밀어붙였다”며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몰라도 의석 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지금이라도 해놓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尹 청와대 해체, 文 정부와 다르지 않아 보여…실현 가능성 낮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시한 제왕적 대통령 문제 해결 방안의 핵심은 ‘청와대 해체’다. 그는 청와대를 해체하고 대통령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수석비서관과 민성수석실은 폐지하고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분야별 민관합동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의 ‘책임 총리제 실질적 운영’과 비슷한 맥락으로 총리와 장관의 자율성·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사례를 들며 실현 가능성을 비판했다. 신 교수는 “청와대 해체 혹은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은 현 정권이 과거 대선 당시 말했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는 대통령실을 광화문으로 옮길 경우, 파생되는 경호 문제 혹은 교통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인데 결국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총리의 위상 강화는 제도적인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교수는 “총리 위상 강화 등은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수없이 반복됐지만 실제로 그렇게 운영됐던 적은 거의 없었다”며 “제도적으로 총리의 독립적 권한을 명시하지 않고 대통령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더 이상 호소력을 가진 공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제도 개선 약속이 더 나은 접근법”이라고 조언했다.

임 소장 역시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 `DJP 연합` 당시 김종필 총리,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 정도가 책임 총리에 근접한 총리였고, 다른 총리의 경우 대통령의 성정과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책임 총리제`가 아니라 `전담 총리제`를 제시해야 한다. 공공 분야 개혁·일자리 창출·복지 등 여러 부처가 관여되어 있는 메가 국정 과제에 대한 정책 결정과 집행에 집중하는 행정 전문가 총리의 등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갈등 조정, 공감대에 중점 둬야”

전문가들은 ‘갈등 조정’과 ‘공감’이라는 원칙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주 임무로 하는데, 현 정권 들어 갈등 조정을 위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의지를 수로 밀어붙이는 현상이 반복돼 정치가 실종됐다”면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가 낮은 상황”이라며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 공감대롤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약 60일 동안의 대통령직 인수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약 실천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버릴 공약은 과감하게 폐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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