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한 주택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했던 자영업자 B씨는 지난해 8월 가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B씨는 아직까지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았다. 2020년 상반기 은행에서 3000만원을 빌려 버텨왔는데, 폐업 신고를 하면 당장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다. B씨는 “폐업 신고하는 순간 개인사업자 지위를 잃게 돼 지원이 끊긴다”고 했다. 그는 한 차례 만기 연장과 더불어 이자 상환유예 지원을 받고 있어 지금은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B씨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은 B씨의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 채권이 ‘정상’으로 관리되고 있어서다.
|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정책금융기관, 제2금융권이 2020년 4월부터 코로나대출(만기연장, 원리금상환유예)을 취급한 후 상환된 금액을 제외한 금액(잔액)은 지난해 7월 말 기준 104조원이다. 잠재 부실 금액이 100조원이 넘는다는 의미다.
금융회사들은 대출 채권을 △정상 △요주의(1개월 이상 연체) △고정(3개월 이상 연체) △회수 의문(‘고정’ 채권 중 회수에 위험 발생) △추정 손실(‘고정’ 채권 중 회수 불가 확실)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 이 가운데 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을 ‘고정이하’ 채권으로 분류하고, 이들 채권 비율(고정이하 여신비율)로 건전성을 관리한다.
금융권은 코로나대출 ‘정상’ 채권 가운데 적지 않은 금액이 고정이하 여신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가 폐업 신고를 하면 해당 사실이 세무서를 통해 금융회사에 바로 접수된다”며 “하지만 신고를 미루면 금융회사가 모든 자영업자 대출 채권의 상태를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질수록 ‘무늬만 정상’인 채권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연체율은 사상 최저를 매달 경신하고 있지만, 부실이 이연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작년 9월 연장 검토 때 이자상환 유예만이라도 하지말자고 한 게 이러한 부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며 “코로나대출 지원 조치가 종료되고 대출 회수에 본격 나서면 부실이 수면 위로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