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단편영화 보듯...CCTV 사회의 예술성 포착

김은비 기자I 2021.11.30 06:00:00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전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
2년에 한번 작가 선정...인도 '캠프'팀 수상
CCTV 대형 스크린 파노라마 등 예술적 실험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그린 매스미디어와 원격 통신을 이용한 감시·통제 사회에 대해 “절반만 맞다”고 반기를 들었다. 텔레비전 혹은 미디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1960년대 텔레비전을 예술 매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텔레비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과감하게 깬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개척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빠른 기술 발달로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텔레비전에서 온라인, SNS 등을 중심으로 매체가 변화하고 있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작가들은 미디어 기술이 본래 가졌던 목적 이외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시도를 하고 있다. 인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협업 스튜디오 ‘캠프’(CAMP)가 그렇다. 하루종일 반복적으로 좌우를 움직이며 정해진 구역을 촬영하는 폐쇄회로(CCTV)는 본래 범죄를 감시하는 목적을 가졌다. 하지만 이들은 CCTV 기술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해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한 캠프팀의 수상작가전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를 개최했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은 2년에 한번 수상자를 선정하고 그 이듬해 수상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이 상을 수상하고 1년동안 작업한 비디오아트 작업 3점을 선보인다. 전시개최를 기념해 내한한 캠프의 샤이나 아난드(Shaina Anand)와 산제이 반가르(Sanjey Bhangar) 작가를 최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이들은 “거대 미디어 인프라가 우리 삶과 가치 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네트워크 미디어 환경에서 기술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며 “CCTV 영상도 때론 영화처럼 아름다운 한 장면을 포착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전시 개최 소감을 전했다.

가장 먼저 전시실에 들어서면 전시실 벽면을 영상으로 가득 채운 ‘무빙 파노라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뭄바이, 맨체스터, 예루살렘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캠프가 20년 가까이 작업해 온 주요 작품들이 극장처럼 펼쳐진 여덟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CCTV가 움직이듯 일정한 움직임을 보이는 카메라는 감시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카메라를 응시하며 소통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영상 배경의 사운드, 텍스트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몰입감을 갖게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에서 제작한 신작도 선보인다. 캠프는 서울 구도심과 도시재생이 공존하고 있는 을지로 대림상가 건물 옥상에 무인으로 작동하는 CCTV카메라를 세웠다. 전시관 속 영상에는 지난 10월 15일부터 내년 2월 27일까지 촬영하는 영상이 송출된다. 이들은 “CCTV뿐 아니라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폰 속 카메라까지 포함하면 현 시대는 인구수보다 더 많은 카메라가 존재한다”며 “이런 시대에 영화가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말했다. 카메라의 동작을 안무하듯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을지로 주변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상은 일상을 담은 단편영화 같은 감상을 자아낸다.

물론 작가들이 미디어 기술, CCTV에 대해 유토피아적인 전망만을 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샤이나 아난드는 “여전히 CCTV 기술이 막강한 통제력을 갖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제대로 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등 기술이 가지는 문제점도 존재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작품을 통해 논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캠프의 ‘8-채널 무빙 파노라마’ (사진=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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