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에도 빅이슈 판매원은 ‘희망’을 팝니다

이다솜 기자I 2020.07.11 00:20:20

성신여대입구역 빅이슈 판매원 박금양씨 인터뷰
전국 40곳에서 자립을 꿈꾸는 빅판 활동
"내 힘으로 돈 번다는 사실에 자부심 느껴...빅이슈에 감사"
햇빛 피할 곳 없는 땡볕에서도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했던 지난 7일 여든을 넘긴 한 노인이 빨간 조끼와 잡지책을 들고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 앞에 서있다. 주인공은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의 빅이슈 판매를 책임지는 ‘열혈’ 빅이슈 판매원 박금양(82·남)씨.

2017년부터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1번출구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박금양씨.(사진=이다솜 인턴기자)


중풍 앓는 아내 위해 배달 업무하다 사고 당해 빅이슈로

박씨는 빅판(빅이슈 판매원)이 되기 직전까지 15년째 중풍을 앓는 아내를 위해 배달 일을 했다. 어느 날 배달을 가던 도중 신호 위반으로 달려오던 택시가 그를 덮쳤고, 그는 왼쪽 발목이 완전히 골절돼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많은 나이, 불편한 몸으로 일거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그에게 친누나가 빅판을 추천했고 그 길로 빅이슈코리아를 찾았다.

판매원 교육을 받고, 2주간의 임시 빅판 과정을 거친 뒤 정식 빅판이 됐다. 하루에 대략 판매되는 권수는 7~8권으로 많은 수익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빅이슈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빅이슈가 아니었다면 갈 곳도, 돈을 벌 곳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사회의 일원이라고 느껴 기쁘다”고 말했다.

10주년 맞은 빅이슈코리아…1159명 자립 지원

1991년 런던에서 시작된 빅이슈는 홈리스, 주거취약계층에게 잡지 판매를 통해 합법적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그 한국판인 빅이슈코리아는 2010년 7월에 창간되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무료급식소, 쉼터 등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모집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100여 명의 홈리스가 전국 40여곳의 지하철 역에서 빅이슈 판매에 도전하고 있다.

빅판은 사측으로부터 권당 2500원에 빅이슈를 구매해 5000원에 판매한다. 한 권을 판매하면 판매 금액의 절반인 2500원의 수익을 얻는 셈이다. 판매되지 않은 과월호 잡지는 신간호로 교환이 가능하며, 빅판 종료시 환불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자립을 꿈꾸는 1159명이 홈리스 판매원으로 일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어느새 10주년을 맞은 빅이슈도 고민은 많았다. 홈리스라는 특성상 연락처, 주거지가 없는 사람이 많아 빅판을 시작하고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빅이슈는 이들을 위해 2018년부터 운전면허, 바리스타 자격증, 취업 교육 등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 6개월 간 꾸준히 판매원 생활을 하고, 꾸준한 저축 등의 입주 조건을 충족했다면 빅이슈가 마련한 임대주택에 입주 기회를 제공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매체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이어리, 캘린더 등 다양한 굿즈 상품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사업모델 계획으로 변화도 꿰하고 있다.

7일 '빅판' 박금양씨가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앞에서 빅이슈 판매를 홍보하고 있다.(사진=이다솜 인턴기자)


폭염, 코로나로 어려움도 겪지만 '공짜 돈'보다 '구매' 원해

박씨는 3년간 빅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빅이슈 판매 도우미인 ‘빅돔’과 함께 잡지를 판매했던 경험을 꼽았다. 서울여대 학생들이었던 빅돔과 함께 빅이슈를 판매했을 당시, 더 많은 사람이 빅이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한 장 나가던 것이 두 장 나가는 등 판매 효과도 좋았고 빅판에 대해 좋은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도 많아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 이후 박씨는 서울여대 학생식당 근처에서 빅이슈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당시 “교수님이나 학생들이 오가며 구매를 해줬고, 동호회 차원에서 돈을 모금해 20권을 한 번에 구매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빅판으로 일하면서 가장 일하기 힘든 계절로 여름을 꼽았다. 더위를 식힐 방법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그는 “바람이 불지 않는 폭염은 일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면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그늘이 있는 곳에 잠시 들어가 있거나, 역 앞 노점상에서 시원한 물을 사 먹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올 초 갑자기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박씨를 힘들게 했다. 그는 “원래는 이즈음이 날씨도 좋고 사람들의 야외활동도 많아 판매가 잘 될 시기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체감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만 빅판을 동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지양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그에게 돈을 주고 무거워서 잡지는 주지 않아도 된다며 갔던 손님도 있었고, 책을 구매한 뒤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그때마다 지불한 금액에 맞는 잡지를 손에 쥐어주고, 받지 않겠다는 거스름돈도 꼭 돌려줬다.

그는 “빅판이 보통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거리라는 인식이 있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빅판을 통해 정당하게 수입을 얻고 있기 때문에 직접 돈을 주는 부조보다는 빅이슈 구매를 해주는 것이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이다솜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