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괴리율? 그게 뭐야? 유가 오르면 괴리율쯤이야.”
증시 개미 군단들 사이에선 요즘 ‘원유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선물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산유국간 증산 전쟁에 배럴당 20달러까지 급락하자 ‘더 이상의 하락은 없다’며 원유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 수요가 너무 늘어나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 심리가 한쪽으로 쏠리면 반드시 반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 원유 ETN 괴리율 90% 등장..만원짜리 1만9000원에 사는 꼴
’원유 상승 베팅‘ 수요가 어느 정도 쏠렸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원유 ETN의 괴리율이다. ETN도 상장지수펀드(ETF)와 마찬가지로 기초지수의 수익률에 연동, 수익 지급을 약속한 상품인데 괴리율은 ETN의 시장 가격과 실제 지표 가치의 차이를 비율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레버리지 원유 ETN의 괴리율이 무려 80~90%에 달한다. NH투자증권의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지수는 2일자 시장가격이 1870원으로 마감해 지표가치 982.26원보다 90.38% 고평가되는 괴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의 괴리율도 83.27%로 올라섰다.
지표가치보다 무려 ETN 시장가격이 80~90% 더 높게 거래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ETN을 산 투자자라면 원래 가치보다 80~90% 비싸게 샀다는 얘기다. ETN 시장가격이 지표가치와 유사하게 내려간다면 곧바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괴리율 차이로 투자유의 안내가 예고된 것은 지난달 이후 60차례나 됐다. 거래소측은 “투자자가 ETN을 지표가치보다 비싸게 매수한 경우 시장가격이 지표가치로 회귀해 정상화된다면 큰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이성이 마비된 시장”..ETN 추가 상장 무한정 못 늘려
수십 차례 경고가 나왔음에도 원유 ETN 괴리율이 계속해서 커지는 것은 원유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ETN 매수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레버리지 WTI ETN은 지난 한 달간 1억주를 추가 상장했고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도 1500만주였던 증권 수를 9300만주로 늘렸지만 원유 투자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원유 투자와 관련 이성이 마비된 시장이라고 비판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1000원짜리가 2000원으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 1500원에 사고 있다. 본질 가치와 비교하면 500원 만큼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성이 마비돼 계속적인 투자주의 안내가 투자자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TN은 유동성공급자(LP)가 지표가치의 ±6% 이내에서 호가를 제시하면서 지표가치와 ETN 시장가격의 괴리를 좁히고 있는데 수요가 워낙 많아 괴리율 축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무한정 ETN 추가 상승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관계자는 “올 들어 2조2000억원 가량의 원유 ETN을 공급했는데 증권사가 위험관리를 위해서라도 무한정 ETN을 추가 상장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원유에 투자하는 상품은 ETF에도 있는데 ETN만 유독 괴리율이 커지는 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ETF는 펀드로 실시간으로 설정, 환매가 이뤄져 추가 증권 상장 자체가 수월한데 ETN은 파생결합증권의 일종이라 증권신고서 등을 내야 하는 등 추가 증권 상장에 수 일이 소요된다는 점이 다르다.
더 큰 이유로는 ETF에 `레버리지`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일일 기초자산 등락율의 2배 만큼 움직이는 레버리지 ETF가 없어 매수세가 몰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하락할 경우 두 배 손실을 보지만 오를 경우 두 배 이익을 본다. 일일 가격 제한폭도 ±6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