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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 흐릅니다"…'넷플릭스 몰아보기'의 비밀

오현주 기자I 2019.08.14 00:45:01

모바일 결핍 ''노모포비아''에 빠진 현대인
디지털마약 ''좋아요'', 복권구매 동기화…
목표·피드백·향상 등 ''행위중독'' 위험 경고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애덤 알터|420쪽|부키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공포에 휩싸인다는 뜻의 신조어다. 저자 애덤 알터는 노모포비아에 빠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만들면 중국과 인도, 미국 다음가는 인구규모 세계 4위(약 2억 8000만명)의 국가가 탄생할 거라고 경고한다(이미지=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12년 8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못 보던 단추가 하나 생겼다.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저 그런 이벤트겠지. 그런데 다들 호기심에 한 번씩 눌러본 그 단추가 세상을 바꿔버렸다. 이름 하여 ‘포스트-플레이’. 넷플릭스가 처음 선보인 ‘몰아보기’ 기능이었다. 열세 개 에피소드가 한 시즌인 드라마를 13시간짜리 장편영화로 탈바꿈시키는 기능. 이 단추 하나는 단순한 편리를 뛰어넘은 거였다. 어째서? 패러다임을 뒤집었으니까. 이전까진 다음 에피소드를 볼까를 고민했다면, 이후부턴 다음 에피소드를 보지 말까를 결정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말이다. 한 번 발 들이면 다시 빼내는 데 가히 ‘혁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중독의 세계’, 그 문을 덜컥 열어버린 거였으니까.

맞다. 지금부터 중독에 관한 특별한 얘기를 들여다볼 참이다. 그동안 자주 화제가 됐던 약물중독과는 조금 다르다. 정보기술(IT)이 핵심인 기기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주제니까. 이른바 행위중독, 좀더 정교하게는 ‘디지털중독’이다. 디지털중독을 따질 때 피할 수 없는 용어가 하나 있다.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공포에 휩싸인다는 뜻의 신조어다. 듣기에 따라선 엄청나게 심각하다 싶지만 사실 내용은 별로 그렇지도 않다. 문자하고, 검색하고, 게임하고, 메일 확인하고, 은행 들렀다가 뉴스 보고, 대략 ‘이 정도’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어느 조사가 사용자 수천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평균은 하루 3.3시간.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한 주 23.3시간, 한 달 100시간, 80세까지 살 땐 11년이란 통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래도 내 얘기는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노모포비아를 빠진 세계인을 모아 나라를 만들면 중국과 인도, 미국 다음가는 인구규모 세계 4위(약 2억 8000만명·2015년)의 국가가 탄생한다는데.

이 모두는 미국 대학에서 심리학·마케팅을 가르치는 저자의 치밀하고 복합적인 연구결과에서 삐져나왔다. 어떤 돌림병보다도 빠르게 번져가는 행위중독의 전모, 그 뿌리부터 증세, 해결책까지 헤집었다.

△또 확인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집착

디지털기기를 향한 집착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파급력이 더 크다. 18∼24세 중 77%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단다. 18∼64세 중 60%는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둬야 잠들 수 있다 하고. 이렇게 살다보면 어찌 될까. 인간의 집중력 말이다. 2000년 12초에서 2013년 이미 8초로 떨어져 평균 9초의 금붕어보다 못한 수준이다. 기억력도 엉망이 됐다. 궁금한 게 생기면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 먼저 반응하니. 오죽하면 스마트폰을 ‘뇌의 연장’이라고 했을까. 그 뇌가 망가지느니 내 몸이 다치는 게 낫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노모포비아를 포함한 이런 행위중독을 약물중독과 유사한 위치에 두고 접근한다. 대략 6가지쯤 된단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목표중독’, 뿌리치기 어렵고 예측은 더욱 어려운 ‘피드백중독’, 조금씩 나아질 거란 ‘향상중독’,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난이도중독’, 해결하고 싶지만 풀리지 않는 ‘미결중독’, 맺어야 산다고 느끼는 ‘관계중독’. 아무리 아니라고 버둥거려도 현대인이라면 이 중 한두 개에는 걸쳐 있단 뜻이다.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는 앞의 ‘단추’로 돌아가 살펴보자. ‘포스트-플레이’를 실행한 지 1년 몇 개월 뒤. 넷플릭스가 서비스 효율성을 점검해봤단다. 미국 성인 3000명 중 61%가 ‘몰아보기’를 즐긴다고 답했는데, “한자리에서 2~8편”이란 수치까지 귀띔한 거다. ‘엄청 재미있을’ 필요도 없었다. 몰아보기 덕에 시시한 드라마에까지 중독성이 생겼다고 했으니. 결국 ‘미결 중독’에 빠진 거다

“거의 당첨될 뻔했어”란 중독도 있다. 맞다. 복권을 사고 난 뒤 나오는 탄식. 알록달록한 숫자볼이 통에서 돌다가 떨어지는 것이든, 동전을 쥐고 하나씩 긁어대는 것이든 상관이 없다. 지난주에는 숫자 6개 중 4개를 맞췄고, 이번 주에는 그림 3개 중 2개를 맞췄다. 결코 ‘꽝’이 아니다. ‘거의 당첨될 뻔’했을 뿐. 그러니 다음 주에도 복권을 사는 게 당연하다. 바로 ‘피드백중독’이다.

사실 저자가 꼽은 ‘피드백중독’의 대표격은 ‘좋아요’다. 시작은 단순했다. 친구들이 어찌 사는지 슬쩍 엿보는 행위. 그런데 점점 ‘나 들렀다’는 공식방문기록이 되더니, 나중엔 ‘온라인 예절’로까지 확대변질되고, 종국엔 게시물의 성적표가 돼 버렸다. 게시자는 ‘좋아요’가 없는 게시물을 망신거리라 여겼으며, 안절부절·좌불안석 속앓이를 겪기도 했다. 이런 ‘좋아요’를 두고 저자는 ‘인류 최초의 디지털 마약’이라고 진단했다.

△잡스가 자식에겐 아이패드 금지한 건

그렇다면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은 없는 건가. 있다. ‘두 살 전엔 화면에 노출시키지 말라’는 게 그중 하나. 생후 2년 동안 급속히 발달하는 어린아이의 뇌가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놓친다는 거다. 그 심각성은 스티브 잡스가 먼저 알아챘다. 자신이 만든 아이패드를 자신의 아이들에겐 금지한 얄미운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억누를수록 빠져드는’ 속성도 이해하란다. 중독을 의지력 부족으로 몰고 가는 덴 한계가 있단 얘기다. 스마트폰 너머 수많은 전문가가 사용자의 그 의지력을 무너뜨리려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차라리 내적 동기 부여나 자기주도성이 나을 거란다.

어차피 IT를 포기하란 따위의 극단적인 해결책은 낼 수 없다. 기술은 포기 못 할 인류의 무기가 아닌가. 대신 신중하란다. ‘좋아요’에 수치제거기를 달아 산술적인 피드백을 없앤다든지 아이가 디지털기기를 접하는 시기를 조절해준다든지. 쉽게 말해 ‘중독 이전에 예방’이다. 어쩔 수 없이 중독됐다면 두 가지. 중독행위를 제거하든가, 중독행위를 다른 행위의 동력으로 삼든가.

행위중독의 중차대한 경고에 붙인 해결책치곤 ‘약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중독이 그렇지 않은가. 원인의 완전제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장 원초적인 단계로 되돌아갈밖에. 알코올이 됐든 스마트폰이 됐든 말이다. ‘좋은 습관’이 답이더란 참 순박한 결론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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