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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달 21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MMT는 일본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며 “정부가 중·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에 대해 시장에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없다면 적자 재정 확대를 용인하는 학설인 MMT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MMT의 실증 사례로 여겨지는 일본조차 MMT를 부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와 일본은행이 10월 소비세 증세를 앞두고 MMT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에 대해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일정부와 일본은행은 MMT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칫 소비세 증세 반대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지금도 투입하고 있는 나라다.
올해 일본 정부 일반회계총액(한국의 본예산에 해당)은 101조 4371억엔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00조엔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의 당초 예산(한국의 본예산에 해당)은 7년 연속 사상 최고를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2012년 말부터 시행된 아베노믹스의 확장적 재정정책 탓에 나랏빚은 2012년 600조엔에서 2018년 1100조엔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해 일본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국가 재정이 파탄한 그리스(180%), 유럽 재정 열등생인 이탈리아(130%)보다도 높은 230%에 달한다.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뿌려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여전히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1%를 밑돌고 있다.
2020년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중 하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책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테파니 켈튼 뉴욕 주립대 교수가 MMT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와 은행이 MMT를 실증하고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소비세 인상 반대 이유로 MMT를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초 열린 결산위원회에서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인플레이션이 1%도 안 되는 시점에서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니시다 쇼지 자민당 의원은 “긴축 재정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야기한다”면서 “돈을 필요한 만큼 발행해도 일본은 절대로 파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니시다 의원은 “이미 일본은 MMT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소비세 인상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일본을 외국 경제 이론의 실험장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 재무성은 MMT를 반박하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미 부채 비율이 GDP의 2배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일본경제가 엄청난 국가 부채에도 존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국채가 대부분 일본 내에서 소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국채를 소유하고 있는 해외 투자자비율은 2004년 말 4.1%에서 2018년 말 12.1%로 늘어났다.
다만 무조건인 증세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본 정부는 2014년 소비세를 5%에서 8%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 그 충격을 막아냈다.
올해도 소비세 인상 대책으로만 2조엔에 달하는 예산이 책정돼 있다. 현금결제 비중이 높은 일본을 캐시리스(Cashless)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신용카드나 전자화폐 등을 활용해 물건을 사면 최대 5%의 포인트를 환원해주는 제도에 2798억엔을 투입한다.
소득세 인상이 저소득층 등에게 더 많은 타격을 입힌다는 점을 고려해 2세 이상 아동이나 저소득층에게 상품권 등을 나눠주는데 1723억엔, 주택구입 지원 비용으로 2085억엔, 경기부양효과가 큰 재해 예방 대책 등에 1조 3475억엔을 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