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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시가총액 5059억달러(24일 종가 기준)
중국의 정보통신(IT) 기업의 한 축인 텐센트가 지난 20일 아시아 기업 중 최초로 시총 5000억달러(543조원)의 고지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시총 5000억달러를 넘어선 기업은 애플과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 다섯 곳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모두 미국 IT업체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14억 중국인 중 10억에 육박하는 인구가 텐센트의 스마트폰 메신저 ‘위챗’을 쓴다. 위챗에서 제공하는 전자지갑 ‘위챗페이’는 이미 중국인 삶 곳곳에 스며들어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게임 ‘왕자영요(Honors of Kings)’는 중국 내 가입자 수가 2억명이 넘는다. 시총 5000억 달러를 넘겼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텐센트의 기세에 바클레이스, 다이와캐피탈마켓 등 투자은행(IB)은 목표 주가를 끌어올리기에 바쁘다.
◇BAT, 中 산업 지형을 바꾸다
텐센트는 마화텅 회장이 1998년 대학 동기 장즈둥과 창업한 회사다. 이들은 창업 초기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 보다 기존 해외 메신저를 베끼는데 몰두했다. 텐센트는 1998년 이스라엘 기업의 컴퓨터 메신저 ICQ와 유사한 메신저 QQ를 출시했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마따나, 이들은 중국식 시스템도 도입한다. 당시엔 중국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 MSN이 들어와 있었지만 단순히 메시지만 주고받는 MSN와 달리 QQ는 개인페이지를 설정할 수 있도록 했고 아바타 서비스 같은 부가서비스를 개발했다.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QQ메신저는 스며들었고 반년도 되지 않아 MSN을 제치고 중국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를 기록한 소프트웨어로 자리를 잡았다. 1999년 가입자가 100만을 넘어섰고 2000년엔 1000만을 돌파했다. 이어 2002년엔 1억명을 넘어섰다.
메신저가 인기를 끌자 마 회장은 온라인게임으로 눈을 돌린다. 회사 내부에선 다소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1억명에 이르는 메신저 사용자를 이용하면 온라인 게임 시장도 선점할 수 있다는 게 마 회장의 판단이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세계 게임업체를 주름잡는 곳은 단연 한국. 하지만 한국 업체들의 눈에 신흥 IT 기업인 텐센트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텐센트 게임 담당자가 한국까지 와서 게임을 론칭하기 위해 구애를 펼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게 텐센트는 국내 회사가 개발한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 등을 서비스할 권리를 따냈고 이들 게임은 중국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이어 최근엔 컴퓨터 외에도 모바일 게임으로 확장해 왕자영요라는 최대의 히트작까지 내놓게 된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확대되며 전용 메신저인 위챗과 위챗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전자결제를 할 수 있는 위챗페이까지 출시했다. 위챗페이는 콜택시나 음식배달, 공과금 납부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며 사용자를 끌어들였고 결국 텐센트의 실적 역시 고공행진 하게 된다.
텐센트의 3분기 매출액은 652억1000만위안(10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1% 증가했고 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67% 늘어난 180억4700만위안(2조9700억원)에 이르렀다. 실적 호재에 주가도 급등, 결국 시총 5000억달러를 넘기게 된 것이다.
텐센트 혼자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아니다.중국 IT 붐을 만든 데는 바이두와 알리바바를 빼놓을 수 없다. 바이두는 검색엔진과 지도 서비스로, 알리바바는 전자쇼핑몰인 ‘T몰’과 알리페이로 중국인의 삶을 바꿔놓았다. 지난 11월 11일 하루 동안 28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중국판 솔로데이 ‘광군제’가 미국 전통의 쇼핑행사 블랙프라이데이를 넘어서도록 한 것 역시 알리바바의 힘이다.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 기업들은 철강이나 건설 등 제조업 중심의 중국 산업 구조를 일순간 IT와 인터넷 산업으로 전환시켰다. 뿐만아니라 14억 중국인의 삶을 스마트폰과 인터넷 없이는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M&A에 AI 등 미래투자에…美 넘어선 中 IT 꿈꾼다
BAT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 의지와 14억 인구라는 내수를 바탕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자본을 축적하자마자 각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실제로 텐센트가 3분기 초유의 실적을 거둔 것 역시 2015년 인수했던 전자책 출판사 ‘웨원그룹’이 9월 홍콩증시에 상장하며 상장 당일 두배 가까이 폭등하는 흥행을 거뒀기 때문이다. 텐센트는 국내 카카오에도 투자를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유통 지형을 열겠다며 ‘신유통’을 강조하는 알리바바는 오프라인 소매업체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백화점 체인 인타임리테일을 인수했고 6월엔 홍콩 롄화 슈퍼마켓 지분 18%를 사들였다. 이어 이달 자회사 타오바오를 통해 대형마트 체인 선아트 지분 36.16%를 취득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온·오프라인을 잇는 신유통이 미래 물류산업의 대안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아시아 업체에만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두는 최근 미국 신생기업인 컴퓨터 화면 기술업체 엑스퍼셉션과 음성기술인식업체 레이븐테크를 인수했다. 주력사업인 검색과 지도 기반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술역량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최근 BAT는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AI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BAT를 AI분야 선도 기업으로 지정했기 때문. 중국 정부는 기업별로 과제까지 내놓았다. 지도 서비스에서 전세계적인 데이터를 구축한 바이두가 자율주행차를, 알리바바는 스마트 도시를 위한 플랫폼 ‘시티 브래인’ 개발을, 텐센트는 의료 및 헬스분야 플랫폼을 맡도록 했다.
바이두는 2018년까지 자율주행차가 중국 거리에서 운행되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알리바바는 클라우드를 통해 항저우시에 인공지능과 딥러닝이 접목된 스마트 시티를 세우려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있다. 텐센트는 미국 시애틀에 AI 실험실을 개소하고 우수한 AI 전문가를 고용해 의료 서비스와 AI의 접목을 연구하고 있다.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는 “AI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인재, 데이터, 인프라, 컴퓨터 역량인데 중국은 인재와 데이터, 인프라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어 컴퓨터 역량을 좌우하는 반도체 부문에서 다소 해외에 밀리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만큼 컴퓨터 역량도 조만간 독자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