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누가 놓고 간 것은 분명한데 그다지 비싼 물건이 아니라 다시 찾으러 올 것 같지도 않았죠. 잠시 고민하던 김 여사는 쇼핑 봉투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누구나 김 여사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김 여사님도 공짜로 미역과 고기를 얻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2만원 어치도 안 되는 미역과 소고기를 탐낸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미역이 든 봉투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이 CCTV에 찍힌 탓에 김 여사는 재판에 넘겨졌고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김 여사가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깊게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 선고유예 처분을 내리긴 했으나 김 여사는 결국 ‘전과자’가 됐습니다.
김 여사의 죄목은 형법 제360조 ’점유이탈물횡령죄’입니다. 점유이탈물이란 분실물이나 표류물(물에 떠다니는 물건), 매장물(땅에 묻혀있는 물건)처럼 주인의 지배권을 벗어난 물건을 말합니다. 즉, 주인이 없어 보이는 물건도 자신의 소유가 아닌 이상 가져갈 경우 죄가 된다는 얘기입다.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저지를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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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선고를 받을 수 있어 점유이탈물횡령죄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 여사가 절도죄가 아닌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됐느냐고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분실물의 위치가 관리자의 지배력이 미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검찰은 김 여사가 미역과 고기를 습득한 마트 내 화장실은 관리자의 지배력이 닿기 어려운 곳이라고 봤고 따라서 절도가 아닌 점유이탈물횡령으로 기소한 것이지요.
점유이탈물횡령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습득한 사람의 의도입니다. 점유이탈물횡령 판결문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구도 ‘반환할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자신이 가질 생각으로 가지고 가 이를 횡령했다’입니다. 즉, 습득자가 물건을 돌려주려는 노력과 의사표시가 있었다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지난 1월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억울하게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권모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경남 안동시의 한 피자전문점에 근무하는 권씨는 작년 4월 가게 앞 버스정류장에서 노트북 가방을 습득했습니다. 그러나 권씨는 여러 사정으로 이를 경찰서에 신고하는 등 반환절차를 밟지 못했습니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지난 1월 권씨가 노트북 가방을 남몰래 보관할 수도 있었으나 피자가게로 가져간 점, 다음 날 교육 차 서울을 방문한 점, 직장동료에게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1심에 불복, 항소했기 때문에 권씨는 앞으로도 몇 차례 법정을 들락거려야 할 것 같네요.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은 분실물을 함부로 가져가 반환절차를 밟지 않고 장기간 보관할 경우 의도가 불순하다고 판단, 대부분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인정한다”며 “분실물 취득 시 경찰서에 신고하는 등 빨리 반환절차나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환절차를 밟을 상황이 안 된다면 아예 분실물을 무시하는 것이 쓸데없는 재판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여 통장에 잘못 송금된 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점유이탈물횡령’이 아닌 ‘횡령죄’로 처벌받습니다. 부산지법은 2012년 9월 전 직장에서 자신에게 잘 못 송금한 318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버티다 횡령죄로 기소된 정모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300만원에 대한 덧없는 욕심 때문에 정씨는 오히려 200만원을 날리고 전과자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