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맘 다이어리]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육아'였다

송이라 기자I 2014.12.21 06:00:00

''완생맘''으로 거듭나지 못한 초보맘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딱 2년 만이다. 임신기간 10개월, 육아휴직 1년 3개월 동안 입지 못했던 허리라인이 살아있는 원피스를 옷장 한 켠에서 꺼냈다. 깔끔하게 다림질된 재킷에 하이힐까지 장착하니 ‘오~아가씨같다!’ 목 늘어난 면티셔츠에 머리 질끈 묶고 애만 보다 나만을 위한 외출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회사로 올라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샀다. 이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다. 아기와 함께 커피숍? 꿈도 못 꿀 일이다. 뜨거운 커피에 혹여라 아기가 데일까 노심초사할 바엔 안가는게 낫다.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옷차림과 커피 한 잔이 너무도 그리운 1년3개월이었다.



“저 어린걸 놔두고 회사에 정말 갈 수 있겠어?” “외벌이도 아껴쓰면 살만해~그냥 관둬~” 돌쟁이 아기를 두고 복직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육아에만 전념하는게 당연한데 돈이 궁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가는 사람을 보는 듯했다. 나는 겉으로는 “그러게요~”라고 맞장구쳤지만, 내심 복직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단언컨대 31년간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육아’다. 대학가는 것도 힘들었고, 취업은 더 힘들었다. 그치만 그런 것들은 나 혼자 힘들면 그만이다. 내 기분이 꿀꿀하면 술 한 잔 마시고 드러누워 자면 됐다. 육아는 달랐다.

그 전까지의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내가 아무리 지쳐도 때되면 아기 밥은 챙겨야 하고, 졸음이 쏟아져도 애가 울면 들쳐엎고 달래야했다. 아기의 웃음 한 방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예쁜건 예쁜거고, 힘든건 힘든거였다. 아무래도 난 엄마되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업무 지시를 기다리며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있으니 가정주부로서의 지난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전업맘의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모든 일의 기준은 아기다.

이르면 6시반에서 늦어도 8시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이유식을 준다. 반은 먹고 반은 사방군데에 짓이겨놓는다. 어지르면 닦고, 저쪽가서 어지르면 또 닦는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아달란다.

결국 설거지는 포기다.

내 밥? 아기가 남긴거 먹거나 서서 국한그릇 마시면 양반이다. 이런저런 장난감으로 놀아주다보면 또 점심시간. 밥 때는 왜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하루 세 끼 뭐해먹일지 고민하는게 기사쓰는것보다 훨씬 어렵다.

밥먹이고 나니 슬슬 졸려한다. 재우는데 하세월이지만 어쨌든 성공. 나도 자고 싶지만, 할 일이 산더미다. 쌓인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2시간여 동안 치우고 나면 아기가 깬다.

하루 다 간 것 같은데 아직 2시반이다. 간식 주고 또 놀아준다. 말 못하는 아기한테 혼잣말 하는것도 굉장한 내공이 필요하다. 유모차 태우고 나가 놀이터에서 놀다보면 저녁 때다. 저녁 먹이고 목욕시키는 동안 신랑이 퇴근한다. 하루 중 그나마 자유로운 시간이다.

9시쯤 간신히 아기가 잠들면 내 일과는 또 시작이다. 쌀을 불리고 야채를 다지고 고기의 핏물을 제거한다.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눌러붙지 않게 저어야 맛깔난 이유식이 완성된다. 밤 11시반. 겨우 누웠다. 막 잠드려던 찰나에 아기가 깨서 운다. 아기를 낳은 후 소원이 하나 있다면 4시간 연속으로 잠 한 번 늘어지게 자보는거다. 밤중 그렇게 서너번을 깨고 다시 재우는 동안 날이 밝아온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얘야,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우리에게 엄마는 이런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마’를 떠올리면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는건 아마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일거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제 막 아기를 낳았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희생의 대명사가 돼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가 똥그란 눈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는게 시리도록 두려웠다.

지금까지 모든 삶의 중심은 ‘나’였는데 순식간에 그 대상이 바뀌었고, 세상은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아기를 낳는게 상상 이상의 책임을 요하는 일이라는걸 아기를 낳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나마 회사로 ‘일탈’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전업맘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는 무시무시한 ‘워킹맘’의 삶이 기다리고 있지만, 어쨌든 ‘다인이 엄마’가 아닌 ‘송이라 기자’인 지금이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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