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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 풍자요? 당연히 바꿔야죠, 하하하.”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 1672억을 전액 자진납부한다고 발표한 이달 둘째주. 미국 브로드웨이 흥행작인 뮤지컬 ‘애비뉴큐’ 내한공연 번역을 맡은 김수빈(26)작가에게 “작품 속 풍자내용을 새로 쓸거냐”고 물었다. 김 작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발표를 보고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지난달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막이 오른 ‘애비뉴큐’는 전 전 대통령 ‘돌직구 풍자’로 화제를 모았다. “(몬스터 전문학교 건립 모금을) 전 대통령한테 부탁할까?”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그 사람?” “무슨 헛소리야! 밀린 세금만 1672억원인데” 등의 대사를 외국배우들이 거침없이 내뱉어 관객의 환호를 샀다. 김 작가는 “추징금을 내기로 했다는 얘기와 그래서 퍼펫(손을 넣어 조종할 수 있는 인형·극 주인공)들이 아쉬워하는 설정을 대사에 녹였다”라고 귀띔했다. 바뀐 대사와 상황은 이달 셋째주부터 공연에 반영됐다.
무대마다 새로운 게 라이브 공연이다. ‘애비뉴큐’는 시쳇말로 ‘살아 있다’. 작품 속 풍자가 이슈 변화와 함께 ‘자라서다’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유럽 사극 소재 뮤지컬과는 다른 유연함이 작품의 매력. 청년실업, 인종차별, 동성애 문제 등 사회적 고민과 성욕 등 인간의 본능에 대한 미국적 시선을 한국적으로 잘 풀어 관객의 호응이 높다.
대사의 ‘한국화’가 잘된 공이 크다. 공감 없이는 감동도 없다. 김 작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웃음의 공감이 커 여기에 번역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공연에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얘기도 나온다. 힘든 현실도 잠시뿐이라는 대목에서 나온 대사다. 미국에서는 조지 부시였는데 이를 국내 무대로 옮기며 김정은으로 바꿨다.
뿐만 아니다. 원작 속 미국 연예인을 김구라·노홍철 등으로 대체해 공감을 키웠다. 무직에 싱글인 극중 인물에게 ‘슬프고 외로울 때는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봐라’고 수정한 식이다. 김 작가는 대사 한 줄 번역을 위해 A4용지 한 장에 빼곡히 다른 예를 들어놓고 이 중에 ‘옥석’을 골랐다. 번역 작업도 두 달 반이 넘게 걸렸다. 원작 수정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게 미국 제작사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김정은 등 현지의 정치적 이슈를 활용하는 건 흔쾌히 받아주더라. 되레 술(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이름을 막걸리나 소주로 바꾸려 했을 때 작품 분위기와 안 맞는다고 해 거절 당해 의외였다.” 그는 되레 “더 바꾸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제안한 아이디어 가운데 80%가 빛을 보지 못했단다.
또 다른 ‘웃음 산파’는 이모티콘과 이미지였다. ‘애비뉴큐’는 무대 좌우에 배치된 스크린에 자막을 깔며 이모티콘과 이미지를 활용했다. ‘개망신’이라는 대사가 나올 때 개 그림과 망신이라는 글자를 자막에 같이 까는 식이다. 섹스신이 나오면 토끼 등 동물들의 성교 이미지를 활용해 엄숙함을 깨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 자막 제작 방식을 뮤지컬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김 작가는 “번역보다 인터넷에서 야한 이미지를 찾느라고 더 고생했다”며 눙쳤다. 김 작가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외국 배우들이 ‘여기서 왜 안 웃지’라며 ‘웃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한다. 계속 내용을 손보고 있다. 자막 영역을 확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돼 나도 즐겁다.
▶김수빈 작가는…
‘맨 오브 라만차’ ‘미스 사이공’ ‘지킬 앤 하이드’ 등의 연출에 참여했다. ‘스팸어랏’ 번역도 그녀의 손을 거쳤다. 애초 미술공부를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에 입학, 영상 연출을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통역을 맡아 공연계에 발을 들였다. ‘도발’이 특기다. ‘애비뉴큐’ 속 ‘여친 임신시킬 땐 중국산 콘돔이랄까’ 대사도 김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 ‘중국산 비아그라 먹으면 갱년기 올 거 같다’ 식의 역발상을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김 작가는 “공연 자막에 기술이 허락된다면 애니메이션도 활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