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을 시작한 지 2주 남짓 지났을 때 그는 친구 소개로 미국에서 ‘빵빵한’ 대학을 나왔다는 또래 3명을 만났다.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온 그들은 한국에서 소셜커머스 사업을 하고 싶은데 같이 하자고 했다. 하루에 한 가지 상품을 공동구매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아이디어를 듣고 김씨와 친구는 ‘이거다’ 싶었다.
다섯은 바로 ‘도원결의’를 맺고, 티켓몬스터를 창업했다. 이후 스토리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티몬은 3년이 지나 월 거래액 1000억원을 웃도는 신종 유통채널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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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티몬에서 영업담당 이사로 지난 3년간 일선에서 정신없이 뛰었다(단짝 친구는 권기현 서비스기획담당 이사). 한 달 전까지 그의 직함은 멀티비즈그룹 영업관리실장. 지금은 R&D센터 기반개발유닛의 사원이다.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잘 나가는 영업담당 임원이던 청년이 돌연 평사원으로 보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김동현(29·사진)씨를 잠실 티몬 본사에서 만났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개발이었습니다. 잘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영역이죠. 포기한 데 대한 트라우마를 언젠간 극복하려고 했어요. 관리자 역할만 맡다가 나이는 먹고 할 줄 아는 건 없는 ‘답답이’가 되는 건 싫었어요. 더 늦으면 못 할 것 같다는 초조함이 커졌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 KAIST 내 아웃사이더였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록밴드에서 드럼을 치면서 보통0 KAIST생들과는 다르게 지냈다. 전자공학도였던 그에게 개발자는 오랜 꿈이었지만 노력한 만큼 실력이 따라 주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친구들을 따라가기에 벅찼다.
티몬 창업 후 3년간 ‘영업맨’으로 최전방에서 바쁘게 뛰었다. 소셜 커머스의 핵심은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 것. 홍대 레스토랑 캐슬프라하를 시작으로 티몬이 개척한 각종 신흥 상품들이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다섯명이 시작한 회사는 직원수 1000명을 넘길 정도로 번창했지만 회사 규모에 비례해 원래 꿈에 대한 갈증도 커져 갔다.
◇“창업자가 윗자리에 앉아 만드는 비효율도 있어..내 길을 찾는 것일 뿐”
“6월쯤 신현성 대표 등 경영진에게 이제 개발자로 일해야겠다고 말했어요. 물론 당황해 했지만 제가 원래 그쪽에 꿈이 있었다는 걸 알 있었고 이해해 줬죠. 창업자는 사람을 모으고 회사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창업자들이 만들어 내는 비효율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깊이 고민하고 판단해야 하는 부분들은 많아지는데 저보다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분들은 많아요.”
영업 책임자로서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 고민하고, 상품을 소싱하고 경영진 회의에 나가는 생활에서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PC 앞에 앉아 개발에 몰두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아직 초급 수준이라는 그의 첫 개발 프로젝트는 직원들이 업무용으로 쓸 문자메시지 발송 플랫폼이다. 9월 중에 상용화한다.
일반적인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직원 평균연령이 30세 이하인 젊은 벤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책이 아니라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티몬의 호칭 문화 덕도 봤다. 김씨의 파격 이동 후 티몬은 잡마켓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인력이 필요하면 외부 채용 공고 전에 내부 직원에게 우선 지원 기회를 준다. 마케팅에 관심 있는 개발팀원이 마케팅팀에 자리가 만약 났다면 별도 평가를 통해 부서이동을 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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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상관’을 후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팀원들은 어쩌란 말인가. 현재 그의 소속 팀원은 총 5명. 그는 나이 순으로 네 번째다. “너무 본인 생각만 한 것이 아니냐”며 다소 비틀어 그에게 물었다.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였어요. 쟤는 창업자라서 마음대로 옮기나, 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요. 지금 저희 팀장님 연세가 마흔이신데 부서를 옮기겠다고 하니 커피 한 잔 하자시더라고요. 제가 정말로 개발자의 길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진지하게 말씀드렸고 그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결국 팀장님도 이해해 주셨지요.”
김동현 사원은 장차 소셜 커머스에서 개발의 영역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업 초기에는 좋은 상품을 소싱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지만 이용자가 많아질 수록 보이지 않는 IT 인프라의 영역의 중요성도 커진다. 백화점에 좋은 물건을 놓는 것이 우선이지만 손님이 어느 정도 북적이고 난 뒤에는 안전하고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도 채용에 몸 사리는 요즘, 티몬이 최근 개발자 100명, 기획자 20명을 대규모 채용하기로 한 것도 유망 스타트업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다.
“소셜 커머스는 이미 흐름을 탔고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연 3조~4조원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충분히 3년 내에 갈 수 있습니다. 이후의 길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제가 착실히 경력을 쌓아 가면 장차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보단 우선 초급 수준을 벗어나 쓸 만한 개발자가 되는 게 우선이죠.”
◇김동현 티켓몬스터 이사
▲1985년 부산생 ▲2004년 KAIST 전자공학과 입학(창업 후 거듭 휴학해 제적 상태) ▲2010년 티켓몬스터 공동창업(지역영업 담당) ▲2011년 B2B사업실장 ▲2012년 멀티비즈그룹(투어·컬처) 영업지원실장 ▲2013년 7월 R&D센터 서비스개발랩 기반개발유닛 팀원.
◇티켓몬스터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한 신현성 대표 등 5명이 2010년 3월 창업한 소셜 커머스 업체다. 서비스 개시 1년 7개월 만에 소셜 커머스 열풍을 이끌며 회원 500만명을 돌파, IT업계를 놀라게 했다. 2011년 9월 미국 2위 소셜 커머스 업체 리빙소셜에 인수됐다. 지난해 연매출은 815억원이며 최근에는 월 거래액 규모 1000억원을 돌파했다. 3년 만에 직원수 1000명을 넘겼지만 최근 대규모 채용을 또다시 실시,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