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도어맨-모범택시 뒷거래‥'관광한국'은 없다

유선준 기자I 2013.04.04 07:18:59

모범택시 기사들과 서로 짜고 외국인에 덤터기
요금 20% 뒷돈..구역 정해놓고 실력행사도

3일 오후 2시 30분께 서울 시내 한 호텔 앞 주변에서 모범택시들이 줄지어 정차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유선준 기자
[이데일리 유선준 기자] 최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캐나다인 올렌도(34)씨는 지금도 서울의 택시만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도어맨에게 인천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더니 도어맨이 일반택시 요금의 2배를 받는 모범택시를 불러줬던 것. 디럭스 택시라고 씌여 있어 도어맨에게 물어봤지만 요금이 비슷하다고 해 믿고 그냥 탔던 것이 실수였다. 그는 인천공항까지 가는 데 10만원이 넘는 요금을 내야 했다. 공항에서 호텔로 올 때 냈던 요금의 2배 수준이었다.

올렌도씨는 “캐나다로 돌아간 뒤 인터넷에서 한국의 모범택시 기사들이 호텔 도어맨들에게 뒷돈을 주고 택시 요금 정보에 어두운 외국인 손님을 배정받고 있다는 글을 보게 됐다”며 “내가 바가지 요금의 희생자가 됐다는 생각에 쓴 웃음만 났다”고 말했다.

3일 시민단체와 택시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호텔 일부 도어맨들은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모범택시 승차를 권유해 승차시키는 대가로 모범택시 기사들로부터 택시요금의 20% 가량 뒷돈을 받고 있다. 이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이지만 단속에 나서야 할 관계 당국은 사실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범택시 기사들은 도어맨들의 묵인하에 호텔 입구 근처에 정차 공간을 얻어 기다리다 택시를 찾는 외국인 손님을 태우는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일부 택시 기사들은 미터기를 조작해 훨씬 더 비싼 바가지 요금을 씌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어맨과 뒷거래를 하는 모범 택시기사들 가운데 일부는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놓고 손님을 태우면서 다른 택시들이 ‘구역’을 침범하면 강제로 쫓아내는 식의 ‘텃세’를 부린다. 한 택시기사는 “호텔에 손님을 내려주고 마침 다른 손님이 있어 태우려고 했더니 뒤에서 경적을 울리면서 비키라고 했다”면서 “때로는 기사들이 무리지어 몰려와서 윽박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경성 한국외국인인권보호법률위원회 위원장은 “호텔에 투숙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모범택시 기사들과 도어맨들이 서로 짜고 불법이득을 취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경찰 등 단속기관에서 철저히 수사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어서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로 외국인들이 대상이다 보니 ‘관광 한국’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으나 서울시 등 관계 당국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호텔 측도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서울의 한 대형 호텔 관계자는 “도어맨과 모범택시 기사 간에 담합을 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호텔 측에선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도어맨 등을 상대로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도어맨과 모범택시의 담합 행위가 현행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고법의 한 중견 판사는 “도어맨이 외국인 손님을 모범택시에 태우는 조건으로 뒷돈을 받는 것은 본업에 위배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배임수재 혐의에 해당된다”며 “배임수재 혐의는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큰 무거운 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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