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부동산 신화와 FRB

안근모 기자I 2005.06.07 07:22:02
[뉴욕=edaily 안근모특파원] 기자에게 미국의 봄은 소음과 함께 시작됐다. 늦가을과 겨울동안 구석 구석 쌓인 낙엽들을 기계로 불어내는 소리가 앞집, 뒷집, 옆집, 온사방에서 순서대로 신경을 자극하며 신춘(新春)을 알려댔다. 봄이 완연히 무르익자 비슷하지만 좀 다른 기계음, 즉 잔디 깎는 소음이 역시 사방에서 들려왔다. 한동안 뜸하던, 골목 맞은편의 집짓기 공사에도 박차가 가해졌다. 대형 트럭이 들락거리는 소리에서부터 못박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갖은 소음이 골목길을 건너 왔다. 하루는 집앞에서 햇볕을 쐬는 기자에게 옆집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냈다. "요즘 바쁘슈?" "뭐 그럭저럭 바쁩니다"고 했더니 "우리는 어제 잔디깎는 사람들을 불렀소" 그런다. `당신들도 좀 깨끗이 깎아라`는 미국식 표현이라는 걸 알아 차렸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맞은편 집으로 옮겨졌다. `공사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얘기를 하려던 참에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우리는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들어보니 생각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낡은 집을 허물고 `매우 매우 아름다운 새집을 지어서 보기에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는 늘 그랬듯이 주변의 집값이 얼마나 올랐다느니, 역시 부동산이 최고라느니 하는 식의 결론으로 끝났다. 서울에 살 적에, 집 앞의 아파트 공사 소음에 시달리며 `미국 사람들은 이런 소음을 용납하지 않을 거야`라는, 부질없는 기대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기자가 사는 동네에서는 낙엽을 제때 안치우거나 잔디를 제대로 안깎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변의 집값을 떨어뜨리는 일이야말로 소음보다 더 나쁜 행위로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미국의 건설자재 유통업체 `홈디포`에 대해 `절호의 매수기회`라고 추천했던 스미스바니의 애널리스트는 "지난 몇년간 집에다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로 인해 주택자재 업체들은 경기를 덜타는 업종으로 변모했다"고 간파했다. 주택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케이블TV 전문채널인 HGTV(Home and Garden Television)에서는 단돈 2백만원을 들여 집을 손보면 집값이 몇천만원 더 오른다는 프로그램(Designed to Sell)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여덟차례나 연속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부동산 신화에 대한 믿음은 계속되고 있다. 집값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으며, 주택 거래량은 오히려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자연히 집값 거품론과 중앙은행의 책임론이 수시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전후의 기술주 거품 논란을 그대로 닮았다. FRB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예봉을 피하려 애쓴다는 것이 당시와 다를 뿐이다. 지난달 20일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거품`이란 용어를 주택시장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그러나 그는 "전국적인 규모는 아니며, 집값하락이 시작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거품`이란 용어 자체도 일반적으로 쓰는 `bubble`이 아닌 `froth`를 썼다. `비눗방울(bubble)`이 터지는 것과 `맥주거품(froth)`이 사그라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FRB 부의장인 로저 퍼거슨이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자산가격 상승이 통화부양 정책 때문인지, 경제 펀더멘털의 성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를 정책 당국자들이 즉시에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택가격 거품 책임론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값을 잡자고 공격적인 금리인상 정책을 동원하지는 않겠다는 약속까지 한 셈이다. "자산가격의 거품은 붕괴된 후에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조기에 거품 징후를 식별한다 하더라도 심각한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고 한 지난 2002년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을 그대로 본딴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에 대해 수시로 우려를 표명하는 우리의 중앙은행과 비교한다면, FRB의 안이한(?) 언사가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FRB는 행동이 매우 단호하다는 점에서 한국은행과 또 다르다. 그들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시작한 금리인상 행진을 일년째 중단없이 이어가고 있다. `장기금리 하락은 수수께끼`라고 한 지난 2월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이나, `거시경제적 영향을 감안할 때 장기금리는 FRB에게 매우 중요하다`한 지난주 그램리치 이사의 말을 볼 때, FRB 역시 내심으로는 집값과 신용거품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은행에게 최선은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똑같이 하는 것이겠지만, 불가피한 사정이라면, 이렇게 목소리보다는 행동을 단호하게 하는 것이 경제에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