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스카운트에 상장 절차 깐깐”…해외로 떠나는 IPO 벤처

박정수 기자I 2024.11.04 05:30:00

상장특례 20년간 총 238개…성장성 불과 20개
올해 성장성 ''0개''…개래소 "이유 특별히 없어"
"기술 떨어져도 매출 우선 심사"…VC 심사역들 불만
코스닥 대신 캐나다行…"중소 벤처기업 문턱 낮아"

[이데일리 박정수 박순엽 기자]“해외 증시로 가면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는데 피어 그룹과 비교만 당하는 한국에서 굳이 상장할 이유가 있나요. 국내는 심사도 깐깐한 데다 거절당하면 상장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차라리 절차가 간소한 나라로 눈을 돌리는 게 낫겠단 생각입니다.”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벤처기업의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고질적인 저평가에 힘을 쓰지 못하는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것에 우려가 큰데,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지나치게 깐깐해진 상장 절차에도 발목이 잡히면서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관련 산업에 우호적인 나라로 IPO 행선지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실제로 ‘혁신기술 트랙(기술평가 특례)’ 대비 증시 입성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모델 트랙(성장성 특례)’ 상장이 유명무실하다는 점이 이들 벤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유명무실” 사업모델 트랙 상장 ‘無’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술성장기업 상장 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총 238개사로 집계됐다. 혁신기술 트랙 218개, 사업모델 트랙 20개 수준이다.

2005년에 도입된 기술성장기업 상장 특례는 코스닥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심사 기준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전문평가기관(25개) 중 2개 기관의 기술평가 결과가 최소 BBB등급 이상(한 곳은 A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는 혁신기술 트랙과 외부 평가 단계 없이 상장 주선인이 추천하는 사업모델 트랙으로 나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그러나 증시 절차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사업모델트랙으로 상장한 기업은 지난 2021년 5개에서 2022년 1개, 지난해 역시 1개에 불과하다. 벤처 기업이 상장하려면 사실상 혁신기술 트랙을 밟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혁신기술 트랙의 절차가 지난해 파두 사건 이후 더 깐깐해졌다는 점이다. 상장에 7개월이 걸리는 사례도 나온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현재는 사업모델트랙이 유명무실해졌다”며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성장성으로 상장하려고 하면 거래소 측에서 주관사에 다양한 조건을 거는 등 요구하는 것이 많은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 “벤처가 상장하기 좋은 환경”…캐나다 증시로 향하는 기업들

깐깐한 상장 심사를 거쳐 증시에 입성한 벤처들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상장 당일에만 반짝 주가가 상승했다 이후 시장의 외면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이에 벤처 기업 사이에서는 캐나다 상장 이민에 대한 요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캐나다 증시는 IPO와 RTO(역인수 합병 혹은 우회상장), CPC(기업 인수 목적 특수회사) 상장, 스팩(SPAC) 상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캐나다 증권거래소(CSE) 상장을 준비 중인 다쓰테크 관계자는 “북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캐나다 증시 추천을 받았다”며 “비공식 상장 옵션(NOPL)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NOPL 방식은 회계적인 특정 기준을 충족해 서류 심사 등만 거치면 상장할 수 있다”며 “상장 후 공모를 진행하는 방식이라 국내와 다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충전기 기업 씨어스와 2차 전지셀 제품·소형 풍력 개발업체 LCM에너지솔루션의 경우 CPC 방식으로 캐나다 증시에 상장한다. 캐나다 CPC 제도는 IPO를 진행하기 어려운 중소 벤처기업이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으로, 토론토 증권거래소에 우회 상장하는 대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캐나다에 여러 비즈니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캐나다 상장 타당성은 충분하다”며 “다만 캐나다의 경우 환경 규제 등이 강한 나라인데 캐나다행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일관성이 떨어지는 반면 문턱만 높은 국내 증시의 상장 기준을 문제삼고 있다. 한 VC 심사역은 “기술평가시 주안점을 너무 시장에 둔다”며 “2개의 기관을 놓고 봤을 때 기술이 떨어지더라도 시장성이 뛰어나 매출만 잘 일으킨다면 기술평가를 통과하는 등 기술특례상장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 “국내 증시 떠나는 기업, 증시 저평가만이 이유 아냐”

금융 당국은 벤처 기업들의 IPO 이민을 두고 한국 증시의 경쟁력 저하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 증시에서 상장을 추진하는 해외 기업도 많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영국 소재의 테라헤르츠 기술기업인 테라뷰는 다수의 반도체 기업이 상장한 국내 증시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고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도 유니콘 기업에 재무안정성·경영안정성 특례요건을 적용하는 등 국내·외 유망 기업들의 상장을 유도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상장 전 여러 지표를 규정에 맞게 평가하고 심사하는 동시에 지난 7월부터는 심사 전문성을 높이면서도 상장 예비심사 기간을 효과적으로 단축하기 위해 특별심사 TF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