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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체코 정부가 단순히 낮은 가격과 납기 준수 조건에 혹해 ‘하나의 유럽’을 내세운 프랑스를 버리고 우리를 택한 것같지는 않다.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우수했다”던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원전 6기를 운전한 경험이 있는 체코 정부는 이번 우협 선정을 위해 200여 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약 20만쪽에 달하는 입찰 서류에 대한 안전·기술 검증을 진행했다고 한다. 우수한 기술력에 가격까지 낮으니 우리 손을 들어준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앞섰는데도 끝까지 안심할 수 없었던 건 다름아닌 우리 내부의 문제였다. 실제로 입찰서류 검토 작업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 측에 2700개 이상 질의했는데, “한국 정부가 원전을 계속 지켜나갈 의지가 있는지”도 물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인터뷰에서 “우리 정책이 극단으로 뒤집어졌다 보니 상대국에서 상당히 우려했다”며 “(탈원전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해야 할지 난감했다”고 언급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의 필요성이 높아진 데다, 인공지능(AI) 산업의 비약적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새로 건설될 원전이 300기(520GW)에 달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30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올림픽 메달밭이 된 총·칼·활처럼 원전이 우리 수출의 주력 품목이 되려면 ‘정권이 바뀌어도 원전 정책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상대국에 심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원자력선진화법’처럼 원전산업의 지속적인 육성·지원을 위한 법제화가 시급하다. 21대 국회가 내팽개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에도 다시 속도를 내야 한다.
체코 원전 수주로 K원전의 독보적인 경쟁력은 입증됐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신뢰(중꺾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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