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기후 경제학자’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 정부에서는 (전기료 정상화를) 제대로 하기를 바라고 또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는 오는 27일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이데일리·에너지전환포럼·김한규·양이원영·양경숙 의원실이 공동 개최하는 ‘에너지시장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의 좌장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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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요금 현실화,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게 돼 기대”
홍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방송이나 인터뷰, 강연 등을 통해 에너지 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에너지 요금을 현실화해야 기후위기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해 더 큰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에너지 가격이 원가를 반영해야 사람들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효율을 개선해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에너지 요금을 정부 통제 아래 두고 있는 한국에선 1970~198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단 한 번도 전기료를 원가에 맞춰 제대로 조정한 적이 없다. 1982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가 267.6% 오르는 동안 전기료는 47.1%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올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원가 국제가격이 2~3배 뛰었고, 그 부담을 오롯이 떠안고 있던 한국전력공사(015760)가 지난해 5조9000억원, 올해 34조원(전망치)의 유례없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자본잠식 위기에 빠졌다. 정부도 그제야 부채 해소를 위한 요금 현실화 계획을 추진하고 나섰다.
홍 교수는 “지난 30~40년 간 역대 정부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싼 에너지를 마음껏 쓰게 한다’는 정책을 써 오다가 올해 원가가 폭등하면서 한전이 저 모양이 돼버리고 나라가 거덜 나는 판이 됐다”며 “이제서야 공무원과 정치인도 ‘더는 안 되겠다’며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발적으로 미리 했다면 지금 억지로 하는 것보다 그 편익이 더 컸겠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서나마 이제라도 하게 된 만큼 제대로 추진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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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문재인 정부, 민주당 정부 전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에너지 요금을 마치 공공재처럼 보편 복지 프레임 안에 집어넣고 가격을 통제해 왔다는 게 그 이유다. 홍 교수는 “전기료를 억제하면 (전기를 많이 쓰는) 돈 많은 사람에게 더 좋다”며 “요금은 원가를 반영한 시장 논리로 결정하고 복지는 에너지 바우처 같은 (정부 재정을 통한) 복지를 통해 해결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랬다면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백화점이 냉·난방한 채 문 열고 영업하는 나라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통제 방식 한계…독립 규제기구 있어야”
홍 교수는 이번 기회에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국내 전기료는 한전이 발표하지만 실질적으론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로 한전의 신청안을 인가하기 때문이다. 산업부 산하에 전력산업 규제기구인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요금 결정에 있어선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는 올 5월 출범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력시장 개편을 11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담았으나 본격적인 추진 계획은 아직이다.
그는 “(요금 결정 때마다) 산업부와 기재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반복하는 중”이라며 “이번에도 요금을 찔끔찔끔 올리다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정상화와 함께 원상복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독립성을 갖춘 전기 규제기구를 갖추고 판매시장 개방 등을 통해 경쟁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한전이 망하지 않을 정도로 ‘이 정도 올리면 국민도 용인하겠지’란 안이한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제대로 된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에너지 전환은 상수…재생에너지 더 늘려야”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값 폭등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변화을 만들고 있다. 탈원전 대표 국가이던 독일이 원전 폐쇄 시점 연기를 논의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 때문에 줄여오던 석탄·디젤 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은 변하지 않는 상수라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표면적으론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 현 에너지 수급위기의 후순위로 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기후위기·에너지전환은 상수이고 수급위기는 변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이를 계기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높이는 등 에너지 독립과 기후 안보를 더 강화하고 있고 미국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나선 게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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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교수는 우리 정부도 현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 차원에서라도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이 수소환원제철 같은 탄소 배출량 저감 설비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 의구심을 갖지 않고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20년 이상 일관된 정책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만들며 15년에 걸친 전력 정책을 유지하려 하지만, 현실에선 정권 변화에 따라 그 방향성이 크게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에서 2030년 원자력 발전 비중을 23.9%까지 낮췄으나 윤석열 정부는 올해 그 비중을 32.4%(초안)까지 높이려 하고 있다. 반대로 30.2%까지 높여 놨던 재생에너지 비중은 21.6%로 낮췄다.
홍 교수는 “올 들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발전 산업계는 고통스러워하는 중”이라며 “사업 추진하다보면 비리가 생기고 이를 조사해 사법처리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와 별개로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 돈 벌 수 있다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투자가 이뤄지고 RE100이나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전 정부를 비판하려면 ‘왜 에너지 전환 정책 5년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5%포인트(p)도 못 올렸느냐, 우린 그 두 배를 하겠다’라고 해야지, 재생에너지 발전을 때려잡는 건 퇴행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