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국 명성 되찾을까…수낵 첫 일성 "심각한 경제위기"(종합)

김정남 기자I 2022.10.25 05:29:39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새 총리 내정
역대 최연소·첫 비백인 英 총리 파격
브렉시트 이후 사회 대혼란 수습할까
"경제 위기, 안정·통합 필요" 첫 일성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리시 수낵 전 영국 재무장관이 차기 총리에 오른다. 1980년생 42세로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영국 역사상 첫 비백인 총리다. 말 그대로 파격 인사다.

그는 한때 대영제국으로 불렸던 최강국이었다가 지금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영국을 재건할 중책을 맡게 됐다. 그는 첫 공식 일성을 통해 “영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국운이 다했다’는 혹평까지 듣고 있는 영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지 주목된다.

리시 수낵 신임 영국 총리 내정자. (사진=AFP 제공)


◇역대 최연소·첫 비백인 영국 총리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보수당 선거를 주관하는 평의원 모임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은 이날 의회에서 차기 총리 후보는 한 명만 출마했다며 수낵의 당선을 선언했다. 영국 보수당 대표·차기 총리 선출을 위한 후보 등록 마감일인 이날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다. 이에 현장에 모인 의원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모돈트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직전에 자격 요건인 지지 의원 100명을 채우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수낵 내정자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 여겨졌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전날 밤 총리직에 재도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낵 내정자는 곧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뒤 정식 취임한다.

그의 총리 내정은 여러모로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1980년 5월생으로 역사상 210년 만에 가장 어린 총리다. 취임 당시 44세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총리보다 어리다. 그는 또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국의 첫 힌두교도 총리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경제(PPE) 학사를 마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거쳤고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던 유복한 엘리트이기는 하지만,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유색 인종이 총리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의 부인은 인도 정보통신(IT) 기업인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이다.

그는 2015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영국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20년 2월엔 보리스 존슨 내각의 재무장관에 오른 후 팬데믹 사태에서 경제를 진두지휘하며 차기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특히 영국 경제가 코로나19 봉쇄로 타격을 입었을 때 유급휴직 등 지원 정책을 펼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는 내정 발표 이후 첫 공식 성명을 통해 “영국은 위대한 나라”라면서도 “우리가 심각한 경제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수낵 내정자는 “우리는 이제 안정과 통합이 필요하다”며 “당과 나라를 한데 모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풍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수낵 내정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는 경제적인 도전이 아니라 ‘경제 위기’(economic crisis)라고 썼다.

수낵 내정자는 오는 25일 오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국왕의 궁전인 버킹컴궁에서 찰스3세 국왕을 알현한 이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취임 연설을 한다. 영국은 내각제 국가다. 국왕이 총리 내정자를 만나 내각을 구성하라고 요청한 뒤 취임을 승인한다.

리시 수낵 신임 영국 총리 내정자. (사진=AFP 제공)


◇영국 정치·경제 대혼란 수습할까

수낵 내정자의 당면 과제는 첫 일성을 통해 밝혔듯 비교적 명확하다. 망가지다시피 한 영국 경제를 살리는 게 급선무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근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고,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영국 성장률이 0.3%로 4월(1.2%) 대비 하향 조정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1%에 달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영국은 준기축통화국으로서 지위도 사실상 잃은 상태다. 영국 국채(길트채) 10년물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 안팎이었는데, 최근에는 4.5% 안팎까지 수직 상승했다(길트채 가격 폭락). 투자자들이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이 나온 이후 길트채를 투매했던 탓이다. 이날 총리 내정 소식 이후 10년물 금리가 장중 3.707%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레벨이다. 파운드·달러 환율은 근래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파운드화 약세·달러화 강세). 시장에서 영국 자산들은 안전하다는 인식 자체가 사라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시장에서 영국의 위상을 되찾는 게 수낵 내정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정치·사회 혼란을 수습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 이후 사회 불안이 극심하다. 브렉시트 이후 6년여간 영국 총리가 수낵 내정자를 포함해 5명에 이를 정도다.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투표 이후 물러났고, 테리사 메이 전 총리는 브렉시트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며 3년 만에 낙마했다. 존슨 전 총리 역시 파티 게이트 등 구설수에 휘말리며 3년여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불과 44일 만에 물러나며 역대 최단명의 오명을 썼다. 대처 전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이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와 함께 분열한 보수당을 통합해 오는 2024년 총선 승리를 이끌 책임 역시 있다. 보수당은 존슨 내각과 트러스 내각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노동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집권 12년 만의 최대 위기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