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57)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이 요즘 자주 곱씹는 말이다. 재단 출범 10년 이래 한국어 문화 보급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재단의 처지는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다.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 보급 총괄기관으로 신(新) 한류의 확산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아직 재단 사업을 집대성할 단독 거점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 이사장은 재단이 미래 경쟁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인재 발굴의 산실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간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 재단 집무실에서 만난 이해영 이사장은 “모른 척 시작하지 않으면 도약할 수 없다. 재단의 숙원인 독립공간 확보와 현판(CI) 교체의 필요성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높아진 한국어의 위상에 맞게 사무공간뿐 아니라 국내외 사람들이 한글과 관련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직관적 공간이 서울에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이해영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당장에 예산도 적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도 “앞으로 10년의 새 판을 짜기 위한 이 같은 조처를 단행하는 것이 내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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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학당재단은 우리나라 언어와 문화를 해외에 보급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국외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2007년 출범)을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하고, 한국어 문화 보급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2012년 10월24일 설립됐다.
재단 출범 불과 10년만에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류 열풍 속 세종학당재단의 역할은 그만큼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이 이사장은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의 열풍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단순히 K팝이나 K드라마를 즐기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한국 기업 취업이나 관련 비즈니스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그 열기는 이제 대륙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2007년 몽골에서 처음 문을 연 세종학당의 당시 수강생 수는 740명에 불과했지만, 2021년 집계 기준 8만1000명을 넘어섰다. 무려 110배 증가한 수치다. 현지인들이 직접 한국어 스터디그룹을 만드는가 하면, 한국어 관련 다양한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이전보다 심층적이고 전문적 학술 수준을 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수강 대기자 수만 해도 1만1900명에 달한다는 게 이 이사장의 얘기다. 현재 세종학당은 82개국 234개소에서 운영 중이며, 올해 270개소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한국어 교육이 취업용 목적에서 나아가 대학, 초·중·고 교육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도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이 이사장은 “베트남은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했다”면서 “현재 한국어를 제1, 제2외국어로 택한 국가는 총 16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에선 동양언어학과 내 한·중·일 언어전공 중 택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엔 일본어보다 한국어의 인기가 더 많다는 게 정설이 됐다.
이 이사장은 “한국어의 비약적 발전은 의미가 크다”며 “한국어의 부흥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경제성장 발전의 디딤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류로 시작된 관심이 개인의 또 다른 이익 실현 도구가 되는 동시에 타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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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제3대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 이사장은 한국어 교육학 1호 교수다. 한국어 교육학이라는 정식 분야명으로 임용된 첫 사례로, 한국어 교육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이사장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이 시점에 한국어 교육의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염병 대유행 시기에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상호적 소통도 과제다.
“한국어를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프로그램과 중심 거점이 필요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학생들을 방치해두지 않도록 지속적인 후속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경제적 효과는 물론 국가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도 맞지 않죠. 서울 거점 확보를 통해 일원화된 교육 모델을 공급하고, 미래 실험실로 키워 향후 학생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한국어 생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내외를 잇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이 이사장은 현판 교체도 재단의 과제로 꼽았다. 현재 현판은 디자인적 요소에 중점을 둔 탓에 자음과 모음을 서로 어긋나게 활자를 배열해 해외에서 문제제기를 해오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그는 “현판을 본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10년 잘 써왔으니, 한글의 과학적 요소와 철학, 창조성을 담은 새로운 현판 제작을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IT기술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은 다른 나라와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이 이사장은 “이미 타국보다 우위의 다양한 온라인 강의가 자리를 잡았다. 일각에선 예산 낭비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향후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며 “메타버스 세종학당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IT콘텐츠가 많이 쓰일 시점은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이해영 이사장은 특히 상호문화주의에 입각한 한국문화 보급을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보급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를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알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일종의 외교관 역할이자 교육기관”이라며 “재단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상호소통 문화”라고 말했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언어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이럴 때 (동북공정 같은) 문화적 논란과 갈등은 애초에 차단하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