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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0년 단골까지 다른 빵집으로…"..파리바게뜨 점주들 눈물의 호소

전재욱 기자I 2021.10.05 05:50:00

운송거부 사태 한달째 애타는 가맹점주
매출 급감, 폐기비용 늘고..단골은 끊기고
대목 추석 연휴에 "죄송하다"는 말로 버텨
파동 전국 확산..물건 안들어와 속수무책
신뢰 깨져 치명타.."믿었던 기사가 배신"

[이데일리 전재욱 김범준 기자] “빵 못 파는 건 그렇다치고 더욱 화나는 건 10년된 단골손님까지 다른 빵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겁니다.”

전북 지역에서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하는 A씨는 4일 기자와 통화에서 “가게에 물건을 제대로 못들인 탓에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이 경쟁사인 뚜레쥬르로 넘어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A씨는 SPC 광주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받아왔는데 최근 ‘물류 대란’이 일고서 이런 상황을 겪는다고 했다. 전북 지역 다른 가맹점 사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전언이다.

▲지난 1일 서울 시내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 모습. 매대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띈다.(사진=김범준 기자)
◇“나는 손님에게 죄송한 사람”

이날부로 SPC그룹 베이커리 광주 물류센터의 운송 거부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흐르며 영업 차질을 빚은 가맹점주의 호소가 커지고 있다. 운송 거부가 진행 중인 광주 물류센터의 관할 지역 광주와 전남,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사태의 파장은 정도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피해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됐다. ①물건을 팔지 못해 발생한 수익 하락 ②재고 관리 부실로 늘어난 보관 및 폐기 비용 ③고객 관리 실패에 따른 직간접적인 매출 감소 등이다.

앞서 A씨 가게는 이런 세 가지 피해가 모두 관통하는 대표 사례다. 그의 가게는 지난달 하루 매출이 전달보다 20만~30만원 감소했다고 한다. 통상 9월이 8월보다 베어커리 수요가 늘기 때문에 계절 탓은 아니다. 물건을 제때 그리고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근원으로 꼽힌다.

그는 “하루는 물건이 아예 안 들어와 매장이 텅 비어 있었는데 2014년 개업한 이래 처음 겪어본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가게는 평소 하루에 아침과 오전, 오후 등 세 차례 물건을 떼어왔는데 요즘은 오후에 한 차례만 납품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추석 장사가 뼈아팠다. 추석은 매해 연중 최대 대목으로 꼽히지만 올해는 꽝이었다. 팔 물건이 없으니 개점 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매해 추석은 하루 매출이 100만원 가까이 오르는 대목인데 올해는 죄송하다는 말로 손님을 돌려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일상의 장사도 큰 변화가 일었다. 가게의 주요 수익원을 차지하는 샌드위치를 지난달부터 팔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팔리는 게 대부분인 샌드위치를 오후에 납품받아야 쓸모가 없다. 그는 “샌드위치는 유통기한이 하루라서 오후에 받은 건 당일 못팔면 모두 버린다”고 했다.

▲파리바게뜨 한 가맹점주가 지난달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버리는 빵 되레 늘어난 이유요?”

이렇듯 팔리지 않는 제품을 미리 보관했다가 나중에 폐기하는 것도 비용이다. A씨가 하루에 3번 물건을 받을 때는 조절 가능한 비용이었다. 통상 아침은 전날 미리 정량을 계산해 주문한 제품이 들어오고 오후에 재고 부족에 따라 급하게 쓸 임시 주문량을 받곤 했다.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공급이 들쑥날쑥하니 정량에 임시 물량까지 더해 미리 주문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탈이 난다. 넉넉하게 주문한 게 팔리면 고맙지만 안 팔리면 버려야 한다.

전북지역에서 또 다른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운영하는 B씨네 사정도 마찬가지다. B씨는 “장사라는 게 변수가 많아서 원하는 만큼만 파는 게 불가능하다 치더라도, 요즘은 하루 폐기량이 평소보다 늘어 서너 박스는 된다”고 말했다. 이게 대부분 가맹점주 부담이다.

그래도 남아서 버리는 게 손님이 물건이 없어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마저 발길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아픈 것은 단체 고객이 끊기는 것이다. 해마다 9월은 개학과 추석, 야외활동 증가 등으로 대규모 주문이 몰리는 시기다. 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매출 감소이지만 다시 주문이 돌아오지 않으면 잠재적인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는 게 타격이 크다.

B씨는 “군부대나 보건소, 교육청 등 굵직한 단골고객이 지난달부터 끊기기 시작했다”며 “우리 집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이 근처 빵집으로 넘어가는 걸로 안다”고 했다.

운송 거부 파동의 진앙인 광주 지역 사정도 나을 리가 없다. 광주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C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운송 거부 사태를 언급하며 “코로나19로 경영 환경이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노조 간 갈등에 힘없는 자영업자를 볼모로 삼아 이익을 취하고자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이로써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맹정주가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관계자들이 지난달 23일 세종시에 있는 SPC삼립 세종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물류 파동 확산하며 신뢰도 ‘금’

광주에서 비롯한 물류 파동의 여파는 시간을 더하면서 점차 북상하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는 지난달 추석을 전후해 일부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시작으로 식재료 공급에 차질이 일고 있다. 케이크 등 직접 제조가 필요한 상품의 원부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 지역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D씨는 “최근 어린이집에 빵을 단체 간식으로 특별납품하기로 하는 주문이 들어왔으나 파업 여파로 재료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취소됐다”며 “이렇게 입은 손해는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비슷한 피해 사례가 최근 수도권에서도 보고됐다.

파리바게뜨 가맹본부가 추산하기로는 물류 거부 사태 이후 현재까지 가맹점 피해액은 수십억원 규모다. 이는 금전적 피해만 가늠한 것이지, 브랜드 이미지 실추 등 무형의 손해는 따지지도 않은 것이다. 이중희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장은 “파업 일수가 길어질수록 가맹점주가 피해를 떠안는 상황”이라며 “화물연대는 어서 배송 업무에 복귀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물류 파동이 괴로운 가장 큰 이유는 가맹점주와 물류 기사 간에 쌓아온 관계에 금이 가는 까닭이다. ‘먹는 장사는 신뢰 장사’라는 말만큼 ‘본사-물류 기사-가맹점주’ 세 주체의 호흡이 중요한데 이런 일을 겪으면서 반목과 불신이 커지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E씨는 “평소 배송 기사에게 매장 창고 열쇠를 맡기고 일했는데 서로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번에 파업을 겪으면서 기사가 창고 문을 잠그고 열쇠를 돌려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라고 믿었기에 배신감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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