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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갤러리] 달팽이의 '집' 연필작가의 '짐'…차영석 '어떤 것 s-64'

오현주 기자I 2020.12.20 03:30:01

2017년 작
15년째 ''연필''로만 옮겨놓은 정물·패턴·세상
지문처럼 얇은 선, 흐트러짐 없는 강도·밀도

차영석 ‘어떤 것 s-64’(사진=큐레이터의아틀리에49)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등에 지고 다니던 집을 잠시 내려놓으면 이런 모양일까. 딱딱한 껍데기에 부드러운 제 몸을 감춘 달팽이 말이다. 지름이 1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확대경으로 이제야 그 형체를 제대로 들여다본다. 돌돌 말아 쌓은 길 따라 저 살아온 노정을 이렇게 찍고 있었구나. 그런데 더 대단한 게 있다. 마치 지문처럼 박은 얇디 얇은 선, 흐트러짐 없는 강도와 밀도, 바로 작가 차영석(44)의 연필이 말이다.

작가는 시끌벅적한 세상을 참 담백하게 옮겨놓는다. 단 한 가지 도구로 단 한 가지 색만 내는데, 바로 ‘연필’이다. 정물을 시작으로 패턴으로 옮겨 가더니 정물에 패턴을 넣어 한데 모아놓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루 종일 긋고 또 긋는, 그 미친 듯한 몰입이 햇수로 15년째란다. ‘어떤 것 s-64’(Something s-64·2017)는 그 여정 중에, 달팽이가 집을 내려놓듯, 잠시 내려놓은 ‘짐’일지도 모른다.

알록달록의 유혹, 일필휘지의 유혹이 왜 없었으랴. 결국 연필이 다 무찔렀나 보다. 화려한 예술? 차라리 정직한 노동이라 해야 할 거다.

22일까지 서울 양천구 가로공원로 큐레이터의아틀리에49서 김도균·김수강·김은주·김학량 등과 여는 기획전 ‘예술가의 연필’(Pencil Passion)에서 볼 수 있다. 개관전으로 열었다. 뽕나무한지에 연필. 90×90㎝. 작가 소장. 큐레이터의아틀리에49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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