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20분부터 32분간 연설을 이어갔으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8번 손뼉을 치며 화답했습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무응답 하긴 했으나 그래도 무난히 마쳤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지난해처럼 연설이 끝나자마자 야당 의원들이 퇴장해 불편한 분위가 연출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 대책부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가동까지 국회의 협조를 당부한 대통령의 메시지에 당별로 호불호가 갈렸으나 의례적인 수준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 들여다보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 지사의 판결 결과가 담긴 기사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의 연설과 비슷한 시간에 상고심 판결도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따라 2년 남은 대선 판도가 달라지는 만큼 여당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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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 이후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계파를 물을 때마다 듣는 답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에는 ‘친문’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원팀’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지사의 판결이 확정되는 순간만은 눈앞의 대통령보다 대법원의 의중에 더 관심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국회만큼 미래권력 지향적인 곳은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연설하는 와중에도 이 지사의 판결 결과를 찾아본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기 후반부를 맞은 문 대통령이 현재 혹은 과거의 권력이라면 이 지사는 어쩌면 미래권력이 될 수 있기에 정치권이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의미이겠지요. 소통관에 있던 국회 출입기자들도 문 대통령의 연설보다 이 지사의 판결 생방송을 더 관심있게 봤다고 합니다. 대통령 연설이 상수라면 이 지사의 판결은 변수였기에 그랬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민주당의 4·15총선 압승으로 문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 운영이 안정적일 것이란 예상은 최근 빗나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미스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철옹성같던 지지층이 갑작스레 흔들리자 청와대도 적잖히 당황하는 기색입니다. 이와중에 새로운 대권주자가 등장했으니 국회의 관심이 몰린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차기 대권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기도 합니다.
민주당의 모든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연설 중 한눈 팔았던 건 아닙니다. 상당수의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등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초선인 김남국 의원은 유독 빠른 속도로 손뼉을 쳐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모 언론이 이를 보도하자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 기사를 갈무리해 밑줄을 그어가며 “박수도 두 배로 열심히 치고, 국회에서 일도 두 배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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