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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니 발렌타인 블룸에너지 상무는 박스 형태의 설비들을 가르키며 이같이 말했다. 굴뚝이 달린 대형 석탄 발전소도, 돔 형태의 원자력 발전소도 아니었다. 냉장고와 생긴 것도 크기도 비슷했다. 발렌타인 상무는 “블룸박스들입니다. 하나 하나가 소형 발전소, 즉 마이크로 그리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블룸박스로 불리는 이 박스는 개당 50kW의 전력을 생산한다. 통상 6개가 1세트로 300kW급 소형 발전소와 같다. 아파트 약 250~300세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공장 안에선 기계들이 블룸에너지가 독자 개발한 연료전지 스택 부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필요한 전력은 발렌타인 상무가 앞서 소개한 블룸박스가 공급했다. 공장 외부 주차장의 전기차 충전소, 공장 내부 휴대폰 충전기도 블룸박스가 전기를 공급한다.
미국 발전용 연료전지 산업을 선도하는 블룸에너지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이케아, 코카콜라 등 세계 유수의 기업 100여곳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포춘 100대 기업 중 25곳이 포함돼 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에도 상장, 성장성을 인정받았다. 그 배경에는 스스로 끊임없이 일궈낸 기술개발·혁신, 그리고 ‘수소가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美수소연료전지 산업 …수소車인프라 구축에 한몫
미국 수소자동차(수소차) 산업은 일본이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단계다. 충전소, 수소 공급체인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반면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산업은 이미 시장이 열려 있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인프라 구축이 수소차 산업에도 중요한 이유는, 석유나 액화석유가스(LPG)가 산업용·가정용·차량용 등 용도가 달라도 같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것처럼 수소 역시 촘촘한 공급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산업이 성장할수록 인프라 구축이 빨라지고 수소차 시대도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발렌타인 상무는 “현재는 천연가스를 주입시켜 (내부에서) 수소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소를 직접 연료로 쓰게 되면 발전 공정 하나가 줄어든다. 바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블룸박스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술은 이미 확보됐지만, 현재는 수소를 직접 공급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해 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라는 게 블룸에너지 측의 설명이다. 발렌타인 상무는 “언젠가는 수소 공급 비용이 낮아지고 직접 연료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 및 에너지 기업 등이 참여하는 수소위원회는 ‘수소 시장의 확대(Hydrogen, Scaling up)’라는 보고서에서 2050년에 전 세계 에너지 수요 중 수소가 약 20%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울러 2050년까지 수소와 관련된 산업 분야에서 연간 2조5000억달러의 시장가치 유발효과 및 30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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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블룸에너지 주목한 이유?…수소에 유리한 美 친환경 정책
블룸에너지의 첫 고객은 구글이다. 아직도 블룸에너지 연료전지를 통해 본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날씨 영향을 받는 태양광과 달리 △24시간 365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 △전력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발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영향을 끼쳤다.
발렌타인 상무는 “블룸박스 한 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나머지 수백개 공급원이 있기 때문에 전력 수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캘리포니아는 매년 산불에 시달리는데, 전력회사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전체 전력을 끊어버린다. 하지만 블룸에너지 연료전지는 화재시에도 전력 공급이 중단되지 않는다. 연료전지 스택 재질은 한국의 온돌과 거의 똑같다. 화재나 빙하 속에서도 끄떡없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IT기업들이 블룸에너지 연료전지에 관심을 쏟는 가장 큰 이유는 이산화탄소 및 오염물질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전기가 화석연료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구글의 경우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향후 IT기기나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전력 소비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제로 탄소 시대가 도래하면 강도 높은 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친환경 기술을 사용하면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보조금이 지급되고 연방정부로부터는 세금도 감면받는다. 즉 탄소배출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뿐더러,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실제로 블룸에너지의 연료전지에선 공해물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발렌타인 상무는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등과 같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백연이나 미세먼지는 전혀 없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미미하다. 이 때문에 발전소를 세우더라도 인근 주민들이나 환경단체의 반발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시장도 의식한 듯 “우리는 매우 정직하고 목표도 분명하다. 깨끗하고 신뢰감있고 저렴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료전지 중에는 효율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도 기업들의 간택을 받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혁신을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블룸에너지의 연료전지는 고체산화물(SOFC) 방식 기술을 택하고 있다. 발전용 연료전지는 기술발달 단계별로 1세대 인산형(PAFC), 2세대 용융탄산염형(MCFC), 3세대 SOFC 등으로 나뉜다. SOFC는 전기효율이 평균 60%로 PAFC(43%), MCFC(50%)를 크게 웃돈다.
또 현재 블룸에너지의 연료전지는 3세대 제품이다. 전력 생산 효율은 최대 65%, 교체주기는 5년이다. 1세대 제품은 효율이 45% 수준에 불과했다. 교체 주기도 2~3년에 그쳤다. 에드워드 킴 블룸에너지 이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연료전지 효율을 높이고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효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해당 제품도 곧 출시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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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공장을 들르기 전 블룸에너지 본사를 방문했을 때 발렌타인 상무가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가 건넨 명함도 한국어로 표기돼 있었다. 한국에서 블룸에너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왔다. 지난해 경기도 분당 복합화력발전소 내 발전설비를 준공, 국내 시장에 첫 발을 내딘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발렌타인 상무는 분당 발전설비 현황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있는 것을 소개하면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에너지는 현재 미국, 일본, 한국, 인도 4개국에서 600개 이상의 마이크로 그리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선 지난해부터 SK그룹과 제휴을 맺고 한국에서도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분당에 이어 KT 대덕·우면 연구센터에도 현재 연료전지 설비를 구축 중이다. 서울시와도 협업을 꾀하고 있다.
블룸에너지는 한국 정부의 수소로드맵에 큰 관심을 내비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발표한 수소경제 로드맵에서 오는 2040년까지 발전용 연료전지 15GW(내수 8GW)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명시했다. 이후 한국에서도 블룸박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친환경적인데다,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발전할 수 있어서다.
발렌타인 상무는 “연료전지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수소가 미래 에너지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비쳤다. 그는 또 “전기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는 시대가 됐지만 신뢰감은 떨어지고 있다. 블룸에너지는 이 차이를 줄이는 데 아주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블룸에너지의 한국 시장 진출은 국내 기업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며 “수소 생태계 조성 및 인프라 구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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