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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년의 신사는 세상을 들썩이게 한 도널드 트럼프(아래)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집중 수사했던 장본인, 바로 뮬러였다. 뮬러는 당시 부하수사관을 시켜 최종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하도록 한 후 조용히 아내와 함께 식사를 즐겼다. 마치 ‘이제 내가 더이상 할 일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LA타임스는 “워싱턴에서 가장 말이 없는, 그러나 가장 화제인 인물로서, 가장 적절한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고스트’라 불린 사나이 뮬러
미국 언론들은 특검수사가 진행됐던 지난 22개월 동안 뮬러를 종종 ‘유령’ 또는 ‘그림자’라고 불렀다. 무엇보다 그의 과묵한 성격 탓이다. 미국 특검은 수사를 마무리하고서 기자회견, 적어도 성명 정도는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동산 투자의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대해 수사했던 당시 케네스 스타 특검은 즉흥적인 ‘기자회견’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뮬러는 ‘침묵은 금’이라는 우리의 격언을 미국 땅에서 몸소 실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온갖 비난을 퍼부어도 대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뮬러 보고서에서 드러난 자신과 관련한 여러 진술과 관련, “날조된 것이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뮬러를 ‘미친 뮬러’로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이 책임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I accept this responsibility and will discharge it to the best of my ability).”
2017년 5월17일 특별검사에 임명된 뮬러의 이 한 줄짜리 언급이 공식석상에서 행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이다. 뮬러와 가까웠던 옛 측근들의 증언에서도 그의 ‘과묵함’은 증명된다. 젊은 검사 뮬러와 일했던 크리스티나 아귀다스는 미 타임지에 이렇게 말했다.
“뮬러가 토크쇼에 출연할 일도, 책을 쓸 일도 없을 겁니다.”
뮬러의 성품은 그가 걸어온 삶에서도 잘 묻어난다. 1976년 연방검사가 된 뮬러는 짧은 기간 변호사로 법률회사에서 일한 것을 제외하면 2013년 은퇴하기 전까지 FBI(미국 연방수사국)에 몸담은 인물이다. 해병대 복무 당시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고, 전투 중 부상당한 군인에게 주는 ‘퍼플 하트’(Purple Heart)와 ‘동성 훈장’(Bronze Star)을 비롯해 여러 훈장을 받았다.
아귀다스는 “뮬러는 뼛속까지 법 집행 옹호자였다”며 “그는 그것에 살았고, 그것 때문에 숨을 쉬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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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뮬러가 드디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법무부가 448쪽에 달하는 뮬러 보고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됐던 ‘부실 공개’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증폭 중이다.
법무부가 18일 공개한 보고서는 전체 보고서 중 일부 민감한 내용을 검게 가린 ‘편집본’이다. 민주당은 이 편집본에 나열된 트럼프의 사법방해 의혹 10개 사례를 이유로 ‘충격적인 증거들이 제시된 것’이라며 가려지지 않은 원본 공개를 요구했다. 제출 기한은 내달 1일 오전 10시까지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법무부가 의회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하원은 법정 다툼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정치적으로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행위”(호건 기들리 부대변인), 공화당은 “민주당이 지나치게 넓고 큰 요구를 하고 있다”(더글러스 콜린스 하원의원)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우리는 법무장관의 ‘트럼프 면죄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달 23일까지 뮬러의 법사위 출석을 요청했다. 뮬러를 의회에 출석시켜 트럼프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만약 수사를 지휘했던 뮬러가 입을 연다면 그것이 트럼프에 대한 면죄부이든, 사형선고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뮬러의 ‘입’에 워싱턴 정가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