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대한민국 맥주 전쟁

최은영 기자I 2019.04.11 05:00:00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2019년 봄, 대한민국 맥주 시장은 실로 치열하다. 150여개에 달하는 각 지역의 수제맥주 제조사들이 전격적으로 기존의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3사가 삼분하고 있던 맥주시장을 뚫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고, 해외 수입맥주의 한국시장 공략 역시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 덕택에 마트와 편의점의 맥주 매대는 더 다양해지고 있어 소비자는 행복하다. 반면에 기존 맥주 3사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 맥주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맥주시장의 재편기는 향후 2년 간 아주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기존 3사의 업소용 맥주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보 전쟁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용 맥주시장에서의 수제맥주 및 수입맥주의 진입 경쟁일 것이다.

하이트진로와의 끊임없는 경쟁에서 주류영업의 달인 장인수 전(前) 오비맥주 부회장(그는 진로 영업맨 출신이다)은 ‘하이트’를 완전히 녹다운 시켜버렸다. 시장 점유율에서 오비맥주의 ‘카스’는 하이트를 더블 스코어로 밀어내버렸다. 카스는 대한민국 맥주시장의 최강자가 되었으나 실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오비맥주는 업소용 맥주시장에서 대세를 잡긴 했지만, 편의점에서 주로 판매하는 가정용 맥주시장에서는 수입맥주에 계속 밀리고 있다.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 2위 하이트진로는 배수의 진을 치고 맥주 신제품 ‘테라’를 출시했다. 초록색 병, 청정 호주의 맥아를 썼고, 전분이 들어갔으며, 탄산을 인공적으로 주입하지 않았다고 광고하고 있다. 병의 전면에 붙어 있는 라벨에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 전부 영어다.

테라는 잘 만든 맥주임에는 분명하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면 카스를 딱 이길 맛으로 만들었다. 카스보다 더 쌉쌀하고 더 풍부한 향을 가지고 있다. 청량감도 좋다.

그러나 제품으로써의 식품은 더 맛있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카스가 맛이 최고라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브랜드를 공개하지 않고 맛을 보게 한 후 선호를 물어 보면 대부분은 맛이 옅은 라거 맥주보다 맛이 진한 에일 맥주를 선호한다고 답한다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전 세계 맥주 시장은 옅은 맛의 라거가 에일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전 세계 라거와 에일의 맥주 시장 점유율은 대략 9대 1 수준이다. 인간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더 많이 먹거나 마시지는 않는다. 두뇌는 진한 맛의 맥주가 좋다고 하지만, 실전에서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게다가 가정용 맥주시장이 아닌 업소용 맥주시장은 ‘브랜드 마케팅’보다 ‘영업력’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이다. 새롭게 무장하고 시장에 출시된 테라의 마케팅이 장인수 전 부회장이 심어 놓은 카스의 최강 영업력을 이길 수 있을까? 주류산업에는 많은 규제가 있고, 특히 국내 업소용 맥주시장은 과점 상황이기 때문에 신제품으로 승리의 공식을 짜내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최근 국내 맥주시장에선 ‘카스 테라’ 전쟁이 한창이다.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테라’를 출시, 시장 1위 오비맥주 ‘카스’와 정면대결에 나섰다.(사진=각사)
과점 상태인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진로가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다. 선택권이 늘어난다. 하이트진로가 사활을 건 테라를 출시하고 강력한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하며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 차별화를 해나간다’고 마켓 시그널를 뿌렸을 때, 오비맥주의 카스는 어떤 전략을 펼쳤을까? 카스가 더 맛있다? 아니면 우리도 새로운 맥주를 낸다? 아니면 전격 할인 판매?

오비맥주는 대한민국 식품음료시장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막힌 전략을 구사했다. 테라의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이 각 매체를 통해 시작되자 오비맥주는 ‘카스의 가격을 곧 올리겠다’고 예고 발표를 했다. 할인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가격을 올리다니, 이런 실책이 있나? 그러나 순간 시장이 희한한 방향으로 들썩인다. 카스가 비싸니 사지 않겠다는 반응이 시장에서 왔을까? 놀랍게도 시장은 그 반대로 움직였다. 각 식당과 술집에서는 카스 사재기를 시작했다. 맥주 제조사와 업소들을 연결해주는 주류 도매상들도 가격이 오르기 전에 카스를 선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창고에 카스가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주문해서 가지고 있다 팔겠다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되니 주류 도매상과 각 외식업장에는 테라를 적재할 공간이 없어진다. 국내법상 맥주 제조사는 맥주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없으며, 반드시 주류 도매상을 거쳐서 유통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이미 도매상의 창고는 카스로 가득 차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어떻게 팔 것인가? 그리고 지난 2019년 4월 4일, 오비맥주는 예고한대로 카스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업계 초미의 관심사는 테라가 아닌 카스가 되어버렸다. 손님들이 식당에서 ‘테라 주세요’라고 해도 ‘저희는 카스 밖에 없어요. 카스 드세요’가 된다. 카스를 미리 준비해 둔 각 업장에서는 카스를 소비자에게 팔면 더 많은 마진을 남긴다. 테라에는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테라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오비맥주의 강력한 영업 전략에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켓리더 카스의 위용이 느껴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맥주시장에 변수들이 많다. 먼저 최근 수제맥주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기존의 맥주 3사를 크게 압박하고 있다. 또 동시에 수입맥주와 경쟁해야 한다. 또한 외식업계에서는 이번 오비맥주의 전격적 가격인상을 불편해하고 있다. 외식업체 입장에서는 재고비용이 커지게 되니 카스의 가격 인상이 반갑지 않다. 또한 국내 주세법 개정이 눈앞에 보인다. 만약 현행 주세법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 가격을 자연스럽게 낮출 수 있는 요인이 생긴다. 그리고 새로운 경쟁의 룰에서 새롭게 경쟁해야 한다. 흥미진진한 한 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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