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마블링(Marbling)’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1992년부터다. 정부가 소고기 등급제를 시행한 해이고, 우리는 소고기를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 기준이 근육 내 지방분포도를 의미하는 ‘마블링’이다. 마블링이 좋으면 즉, 근육 내 지방이 더 많으면 높은 등급을 받고, 지방이 적으면 낮은 등급을 받게 된다. 이 마블링 기준의 소고기 등급제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제도로 소고기를 줄 세우고 있다.
이 소고기 등급제는 이후 소를 사육하는 농가들의 사육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소를 팔아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하니, 모든 농가들은 소의 근육 내 지방이 많이 끼는 방향으로 사육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곡물 사료, 특히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 것으로 알려지자 국내 옥수수 수입량이 급증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옥수수 수입액은 전 세계 3위였다. 전 세계 옥수수의 5~6%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료용이다.
물론 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한우는 맛있다. 어릴 때 먹던 그 고소한 맛과는 다른 풍부한 맛이 있다. 눈꽃 마블링이 주는 풍부한 맛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맛의 기준은 아니다. 우리나라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줄 세워 놓은 기준일 뿐이다. 2017년 기준 국내 생산 한우 중에서 5개 등급(1++, 1+, 1, 2, 3) 가운데 1등급 이상을 받은 한우는 72%이고, 올해 새롭게 개정되는 등급판정기준에 따르면 1등급 이상을 받는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즉, 1등급을 받지 못하는 한우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줄 세우기의 성공인가 실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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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로 잠깐 가보자. 전 세계 사람들이 피렌체로 몰려드는 데에는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와 중후한 두오모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피렌체 특산 흰 소 끼아니나(Chianina)로 만든 초절정 스테이크인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를 맛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이유다. 끼아니나는 방목 목초 사육을 하므로 마블링이 거의 없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그 담백하고 고소한 육향으로 먹는 스테이크다. 마블링이 없어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혹자는 이를 ‘스테이크계의 아이스크림’이라고 했다. 이 스테이크는 이탈리아에서, 아니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마블링이 없는 끼아니나는 우리나라의 품질등급 기준으로 치면 모조리 3등급이다. 제대로 된 식당에도 못 들어가고, 급식소용 국거리용으로는 갈 수 있으려나.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고기가 우리나라의 등급 기준으로는 최저 등급의 싸구려 소고기가 되다니. 맛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줄 세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지다 보니 입맛도 줄을 세우고 싶어 한다. 고기를 속여 파는 일이 횡행했던 시절에는 이런 한 줄 세우기식 등급제가 필요했을 터이다. 이제는 나라님에게 맡겼던 내 입맛을 되찾아오자. 한 줄 세우기가 아닌, 각자의 취향에 맞는 소고기를 고를 수 있게 하자. 대학입시도 수시에, 정시에, 특별 전형 등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기준으로 가는데, 소고기만 굳이 한 줄 세우기가 필요할까? 소비자용 공인 등급제가 없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도 잘만 팔리고 있다. 한 줄 세우기식 등급제가 없다고 해서 큰 일이 나진 않는다. 위아래로 획일적인 줄 세우기 말고 횡으로 잘 분류해서 각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소고기를 고르게 하는 호주의 방식을 벤치마킹해보면 어떨까? 마블링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그런 소고기를, 풀 먹으면서 자란 소를 선호하는 사람은 그런 소고기를 고르도록 하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의 획일화된 등급제로는 다양한 소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블링이 적으면 손해를 보니 그 어떤 생산자라도 국가 등급제에 따라 마블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국어·영어·수학 점수만 보는 줄 세우기에 댄스 영재는 설 곳이 없다. 등급제가 바뀌면 어마어마한 옥수수 수입도 꽤 줄어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