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 "디지털 시대에도 '만년필'로 소통…젊은층이 더 좋아해"

이윤정 기자I 2018.12.21 05:00:32

국내 최초 '만년필 연구소' 열어
3만 회원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 운영
"만년필의 다채로운 얼굴 매력적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어"

박종진 만년필연구소장(사진=틈새책방).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만년필은 고급 문화나 취미 활동으로 쓰는 게 아니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SNS에서 ‘소통의 도구’로 만년필을 더 많이 찾는다.”

코난 도일과 푸치니는 파카 만년필을, 닉슨 대통령은 쉐퍼 데스크펜을, 박목월 선생은 파카 45를 사용했다. 100여 년을 넘게 역사와 함께해 온 남다른 펜.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도 젊은이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만년필’이다.

국내 최초로 2007년 서울 을지로에 ‘만년필연구소’를 연 박종진(48) 소장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을 보고 매력에 빠졌다. 이후 만년필 사랑은 40여 년 간 이어졌다. 평일에는 평범한 회사원이다.주말에는 만년필을 좋아하는 이들과 지식을 공유한다. 직접 만년필도 수리해준다. 2005년부터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를 운영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0명 즈음이던 회원은 현재 3만8000명 가까이 늘었다. 박 소장은 “1년에 두 번 여는 ‘서울 펜쇼’에는 일본이나 멀리 유럽에서도 만년필을 사랑하는 이들이 찾아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역설적이게도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에도 만년필을 사용하는 젊은이의 수는 줄지 않았다. 만년필로 쓴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면 호응도 뜨겁다. “온라인 상에서 만년필은 ‘소통의 도구’다. 만년필을 좋아하고 열정적인 사람은 젊은 층에 더 많다.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생각한다.”

만년필에 관한 그간의 연구와 자료들을 모아 최근 ‘만년필 탐심’(틈새책방)을 펴냈다. ‘탐심’은 만년필을 대하는 두 가지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깊이 살펴보고 공부한다는 의미의 ‘탐(探·찾다)’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한다는 의미의 ‘탐(貪·탐하다)’이다. 책은 만년필을 통해 본 역사적 사건과 인간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히틀러는 어떤 만년필을 썼을까’라는 역사적 궁금증을 비롯해 벼룩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년필을 구한 개인적 이야기 등 27가지 에피소드를 전한다. 박 소장은 “만년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다이아몬드나 금·은 장식을 한 만년필은 많게는 수억원을 호가한다”며 “문구점에서 파는 2000~3000원 짜리 저렴한 제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로 낙찰된 고가의 펜으로는 1928년 금과 은으로 그린 후 옻칠한 일본 파이롯트사의 만년필이 있다. 낙찰가는 23만9250달러(약 2억 71011만원)였다. 평균적으로 몽블랑 만년필이 가장 비싸고, 가장 오래된 만년필은 1880년대 ‘워터맨 만년필’이라고 한다.

“수백개의 만년필 회사에서 여러 종의 만년필을 만들기 때문에 종류는 너무나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적으로 우수한 곳에서 훌륭한 만년필이 나온다는 거다. 현재는 미국 만년필이 가장 우세하고 독일, 이태리, 프랑스, 일본 순이다. 이들 국가를 포함한 10대 회사의 만년필이 전체 시장의 90%를 주도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를 이토록 빠지게 한 만년필의 매력은 무엇일까. 박 소장은 ‘다채로운 얼굴’을 매력으로 꼽았다. “만년필에는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필기구, 다른 하나는 장신구다. 글씨를 쓰더라도 만년필을 통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직선이 많은 한글이야말로 만년필로 썼을 때 가장 아름다운 문자다. 만년필이 서양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인들에게 유별나게 애호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천만원짜리나 3천원짜리나 만년필의 원리는 똑같다. 그러니 잉크 한병, 노트 한권, 만년필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만년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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