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검찰 특별수사팀은 2013년 4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아 빠른 속도로 국정원 윗선을 향해 수사를 진행했다. 박근혜정부는 특별수사팀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공작을 벌여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통성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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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가짜 사무실 등 조직적 수사 방해
엉터리 수사를 했던 경찰과 달리 검찰 수사팀은 빠른 속도로 국정원 윗선을 겨냥했다. 수사팀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보안시설인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아 진행됐다. 국정원이 압수 장소를 안내하고, 압수 대상 문건 역시 보안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거나 보안처리한 뒤 제출했다.
검찰은 국정원의 안내를 받아 심리전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 원세훈 전 원장이 월례간부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 담긴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도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심리전단 사무실에선 유의미한 문서들을 확보하지 못했고 ‘지시 강조 말씀’ 곳곳은 보안처리 명목으로 검게 칠해져 있었다. 수사팀은 이 같은 미진한 압수수색 결과에도 불구하고 심리전단 직원들을 줄소환하는 수사 방식을 통해 상부로부터 댓글공작에 대한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별수사팀이 성과를 낼수록 정권의 견제는 더욱 거세졌다. 여당 의원들은 수시로 수사팀에 대해 음해성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던 와중인 같은 해 9월 느닷없이 채 전 총장에 대한 혼외자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전 총리의 압박 등에 밀려 결국 채 총장은 옷을 벗었다.보호막이 사라지자 수사팀은 안팎의 거센 압력에 노출됐다. 수사팀 직속 보고라인인 중앙지검 2차장검사와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 방향에 대해 이견을 내며 수사팀의 발목을 잡았다. 수사팀과 윗선의 갈등이 지속되는 와중에 윤석열 팀장은 상부 보고 없이 수사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재판이 시작되자 어려움은 가중됐다. 수사팀 소속 검사들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공판기일마다 서울로 올라와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부팀장이던 박형철 부장검사마저 연이어 좌천성 인사로 한직을 떠돌았다. 재판 진행 과정에선 검찰에서 핵심증언을 했던 국정원 직원들이 돌연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수사팀은 공소유지를 이어가 원 전 원장의 실형 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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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후 검찰이 국정원의 수사방해 공작을 밝혀낸 것은 내부 관계자의 제보 덕분이었다. 이명박정부 하에서의 국정원의 조직적 정치공작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한 직원으로부터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을 전달받았다. 팀장급으로 정치공작에 가담했던 유모씨가 자신이 구속된 후 윗선에 대해선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되자 억울함을 토로하며 과거 자신이 가담했던 수사방해 공작의 실체를 검찰에 알린 것이다.
검찰은 유씨 진술을 토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 당시 국정원 수뇌부가 수사와 재판에 대비한 수사방해 공작을 조직적으로 자행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정원이 과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섰던 심리전단 사무실을 가짜로 꾸몄고, ‘원장님 말씀’ 자료에서 정치공작 지시 내용을 일부러 검게 칠해 검찰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직원들의 진술 번복 역시 상부의 지시였다.
검찰 수사 결과 수사방해 공작은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이던 남재준 당시 원장의 지시였다. 그는 “박근혜정권의 명운이 달렸다”며 검찰 수사에 대비하라고 간부진에 지시했다. 이 같은 공작엔 심지어 당시 국정원에 파견나가 있던 검사 3인도 관여했다. 감찰실장이던 장호중 검사장, 법률보좌관이던 변창훈 검사, 법률보좌관실 연구관이던 이제영 검사다. 이들은 모두 국정원 파견이후 승승장구했다.
수사방해로 기소된 국정원 전직 간부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남 전 원장은 징역 3년6월, 장 검사장은 징역 1년, 이 검사는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았다. 변 검사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피의자심문 당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울러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드러나는데도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채 전 총장 혼외자 정보를 이용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2014년 수사에 나서 국정원 정보관을 기소했지만 윗선을 규명하지 못했다. 더욱이 서초구청 내의 가담자를 잘못 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은 재수사에 나서 국정원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첩보를 수집한 뒤 남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서초구청 공무원을 통해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부 등 개인정보를 확보한 것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역시 관할 경찰서를 통해 아이에 대한 사진 촬영까지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남 전 원장 등 국정원의 조직적 가담을 확인하고 국정원에 아이의 개인정보를 넘긴 서초구청 과장을 구속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