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와 여당이 이처럼 신용카드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를 아예 ‘0%’로 낮추겠다며 연일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2년 연속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뛰면서 자영업자 원성이 높아지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내놓은 방안이다. 그러나 정부가 신용카드를 받는 소상공인에게 제공하는 세금 감면 혜택 등을 고려하면 지금도 수수료 부담이 사실상 0%에 가까운 만큼 추가 수수료 인하가 이들의 경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정 , 신용카드 대체할 ‘제로(0)페이’ 도입 박차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정의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은 두 갈래로 나눠 추진 중이다. 우선 속도 내는 것은 신용카드가 아닌 대체 결제 수단의 도입이다. 가맹점이 내는 결제 수수료가 매우 낮거나 아예 없는 이른바 ‘제로(0)페이’를 시중에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제로페이(소상공인 페이)는 소비자가 휴대 전화에 내려받은 애플리케이션으로 구매하려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바코드, QR코드(사각형 모양의 종이 또는 그림 안에 가격 정보 등을 담은 것) 등을 읽으면 소비자 은행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돈을 직접 이체하는 방식이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로페이가 신용카드와 달리 결제 단말기가 필요치 않고 별도 관리 비용 등도 들지 않으므로 수수료를 대폭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등은 제로페이 도입으로 연 매출액 3억원 이하인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0%, 연 매출액 5억원 이하 중소 가맹점의 수수료율은 0.3%까지 끌어내리겠다는 목표다. 현재 영세 가맹점은 판매액의 0.8%, 중소 가맹점은 1.3%를 신용카드 회사에 수수료로 낸다. 제로페이는 이르면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여당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권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서울페이’ 등을 전국적으로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도 제로페이 사용금액에 전통시장과 같은 소득 공제율 40%를 적용하겠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기존 신용카드(소득 공제율 15%)나 체크카드·현금영수증(30%)보다 높은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해 제로페이 사용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규 적용하는 소득공제 정도를 빼면 소비자가 제로페이를 사용할 유인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제로페이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로 가맹점 확보, 해킹·피싱 같은 보안 문제 해결 등 시스템 정착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신용카드처럼 물건을 먼저 사고 나중에 대금을 지급하는 신용 제공 기능이나 가맹점 할인·포인트 적립 등 부가서비스 혜택도 제공하기 어렵다. 가맹점 수수료를 바닥 수준으로 낮춘 만큼 소비자 마케팅에 추가로 돈을 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간 기업에만 맡겨서는 활성화되기 어려운 혁신 서비스를 정부·지자체 등이 민·관 합동으로 시도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다”면서도 “새로운 결제 방식이 정착하려면 정부가 사용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상인이 가격을 깎아줄 수 있도록 기존 신용카드 관련 법을 고치거나 새로운 거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정 안에서 정책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전날 신용카드 소득 공제 혜택을 영구화하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인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 공제를 계속 유지하도록 법에 못 박자는 것이다. 이같이 신용카드 사용에 금전적인 혜택을 강화하면 제로 페이를 사용할 유인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같은 당에서조차 정책의 큰 방향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금융당국 “정부·소비자도 비용 부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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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은 제로페이 구축과 별개로 신용카드 수수료를 직접 인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2012년 이후 3년마다 신용카드 결제에 들어가는 카드사 원가를 고려해 수수료율을 조정한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소득세법 등이 자영업자가 고객의 신용카드 결제 요구를 거부하거나 현금 지급 시 판매 가격을 깎아주는 등 결제 수단에 따라 가격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신용카드 가맹점 가입도 사실상 의무화함에 따라 가맹점이 부담하는 카드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아지지 않도록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올해 수수료율 산정 시기가 도래해 오는 11월까지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카드회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밝힌 수수료 개편 원칙 중 첫머리에 오른 것은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그간 신용카드 결제 활성화로 원활한 세금 징수, 결제 편의성, 폭넓은 부가 서비스 등 혜택을 누린 정부와 소비자가 이제는 카드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카드 수수료율을 추가로 인하하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당국 판단이다.
예컨대 정부가 신용카드를 받는 자영업자에게 제공하는 부가가치세 감면(신용카드 매출 전표 발급 세액 공제) 폭을 지금보다 확대하거나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을 수수료 원가에서 제외해 소비자에게 카드 연회비를 부담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가맹점이 신용카드를 무조건 받도록 규정한 현행 의무 수납 제도 등 사실상 기존 신용카드 제도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당국 방침이다. 만약 의무 수납제를 폐지 또는 축소할 경우 가맹점이 현금 결제 시 더 많은 가격 혜택을 주는 등 소비자의 신용카드 사용을 거절할 수 있게 돼 카드사와의 수수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부가 증세에 나서기 어려운 것처럼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지우려는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이야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 위원장이 수익자 부담 원칙을 말한 것은 화두를 던진 것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업계 관계자는 “카드 수수료 정책은 단순 수수료율 인하보다는 지급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소비자·정부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협의를 통해 여신전문금융업법, 세법 등 관련 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가맹점주를 달래기 위해 제로페이와 같은 정책에 목을 매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