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2000년 초반 IT 버블(거품) 때 IT 기업은 형태가 있었지만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나중에 비트코인은 버블이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말 금감원 송년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정부는 이어 올해 1월 1일부터 가상화폐 투기를 잡겠다며 거래 기반인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전면 금지, 시장 신규 진입을 사실상 차단했다.
하지만 신규 계좌 발급 중단 다음날인 1월 2일, 국내 최대 규모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bithumb)’은 올해 ‘빗썸 인재발굴 프로젝트 400’을 통해 총 400명의 정규직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3년 말 설립된 이 회사는 불과 4년 새 직원 500명 규모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하루 최대 6조원 규모 가상화폐가 거래되고 24시간 운영되면서 잦은 서버 다운으로 고객 불만이 커지자, 또다시 대대적인 인력 확충에 나선 것이다. 빗썸의 올해 인력 채용 규모는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한 곳인 현대중공업(009540)이 작년 한해 뽑은 직원 수와 맞먹는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버블에 불과한 투기로 규정하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버블이 오히려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일자리를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Block chain·암호화를 통해 분산된 공개 장부)’을 활용한 가상화폐는 현재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며 투기적 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버블이나 허상으로 치부하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마저 가로막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투기에서 비롯된 버블을 막기 위해 신산업의 맥을 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진짜 버블은 소득주도성장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주도성장은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도 함께 살아날 것이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통해 경제 활성화가 이뤄지면 투자도 확대되고 자연히 일자리도 같이 늘어난다는 결론이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7530원(전년 대비 16.4% 인상)으로 정하고,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이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려 소득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산 증대 등에 기반하지 않은 인위적 가치 상승을 우리는 ‘버블’이라고 부른다. 가상화폐의 경우 블록체인이란 기술이 자생적으로 개발됐고 이를 바탕으로 거래 시장이 자연적으로 형성됐다. 아무런 인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빗썸과 같은 거래소가 생겨났고 돈이 몰리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가상화폐 열풍은 또 전통적인 PC 수요 감소로 성장세가 둔화되던 D램 반도체의 수요까지 끌어올렸다. 이 역시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 전혀 없이 나타난 현상으로 반도체업계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 결과 D램 생산 라인 증설이 속속 이뤄지면서 일자리도 추가로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는 시장 통제와 규제를 가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그 자체가 4차 산업 혁명시대에 맞지 않는 또 다른 버블과 부작용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