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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미국 듀폰(1802년 설립)은 업력 200년이 넘는 화학회사다. 또다른 미국의 화학회사인 미국 다우케미컬은 1897년 태어났다. 우리의 기업사(史)와는 차원이 다른 전통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거인은 지난해 전격 합병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새로운 먹거리인 ‘바이오’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들은 중국 등 신흥국 수요가 줄면서 석유화학업계의 위기를 고민해왔고, 재빨리 군살을 빼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일본 1위 철강업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은 올해 초 일본 4위 닛신제강 인수를 발표했다. 일본 뿐만 아니다. 중국도 철강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 과잉인 철강산업을 헤쳐나가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이런 업계 합종연횡 와중에도 유독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에 굼뜬 모습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데일리가 창간을 맞아 지난달 27일 대표적인 경제 원로인 ‘따거(大哥·큰 형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찾았다.
그의 논리는 시종일관 명쾌했고 막힘이 없었다. 그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인 윤경제연구소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해외의 개별기업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왜 우리는 구조조정을 못 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번 보세요. 미국이 화학회사들이 많이 어렵습니다. 듀폰과 다우케미컬이 합병을 하잖아요. (세계 1위인) 독일 바스프를 상대하려면 합해야 한다 이거지요. 우리나라였다면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의 진단은 차라리 우리 경제에 대한 ‘격정토로’에 가까웠다.
◇“구조조정, 조선 해운에서 끝날 문제 아니다”
-한진해운 사태가 초미의 관심사다. 처리 방향이나 과정을 어떻게 보시는지.
“제가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 조선 3사가 다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난리가 났다. 조선 3사를 다 살리려면 3개가 다 망한다. 해운은 이런 공급 과잉에 2개나 있어야 하나.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을 봐라. 그들은 우리처럼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인수합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도이치뱅크가 코메르츠뱅크와 합병하려고 한다.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다 마찬가지다. 우리만 못하고 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수단이 있다. 채권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든.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에서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안전장치를 해줘야 한다. 우리는 행정부에 대해서만 몰아부치는데 국회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국가 운영에 책임있는 정부다.”
-정부가 한진해운 사태에서 플랜B를 제대로 준비했느냐는 비판이 많다.
“관료들의 중요한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이해관계자들 책임이 다 있는 거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닮은 꼴이 있다. 두 회사를 이끌던 남자가 죽었는데 그 후임을 부인(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현정은 전 현대상선 회장)이 하는 게 말이 되나.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시대에 전문성이 따라올 수가 없지 않느냐. 사내에서 견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없었다는 게 문제다. 정부도 민간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되겠지만 무관심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장에서도 아우성이 나왔어야 하는데 없었다. 비판하지 못 한 언론은 책임이 없는 줄 아는가. 누구 하나 이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보면 금융 분야의 비중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 왜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에 앞장서나. 먼저 정부가 산업 전체 차원에서 봐야 한다. 이게 조선 해운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수요 축소에 따라 자동적으로 공급이 넘치는 대표적인 업종이 철강 건설 반도체 기계 등등 쭉 있다. 다 거쳐가야 한다. 이런 업종을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 살릴 건 살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해야 한다. 우리 산업을 어떻게 재편할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걸 지난 3년동안 했어야 한다. 그런데 큰 그림 없이 전부 제멋대로 했다. 그러니 개별 기업으로 접근해서 금융 논리가 튀어나왔다. 통폐합을 할지 실업자는 어떻게 할지, 그 다음이 금융 문제인데 거꾸로 된 것이다. 금융 논리가 산업 논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변양호 신드롬’이 만연해있는 것 같다.
“참 아쉽다. 누군가는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밀어부쳐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기백이 사라진 듯하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안에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룬 배경 중 하나로 우수한 인력들이 정부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해왔던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 이런 글로벌 시대에 세종시에서 뚝 떨어져 있으니 어떻게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느냐. 정말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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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민간 특위 만들어 개헌 추진해야”
윤 전 장관이 이렇게 구조조정에 목소리를 높인 건 이유가 있다. 우리 경제의 상황을 정말 어렵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에 이미 편입돼있다는 전제 하에 얘기를 풀어갔다. 그는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을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로 규정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어쩌면 어려운 게 당연하다.
-현재 우리 경제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매우 어렵게 본다.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등 전체적인 안정성(채무지불능력)은 크게 향상된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먹고 살아가는 형편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대외경제 환경이 아직 개선되고 있지 않다. 2008년 위기 이후 제대로 된 회복력을 보이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도 금리 인상을 못 한다. 둘째, 국내 환경도 어렵다. 국회가 저런 모습인데 어떻게 경제를 뒷받침 하는가. 노조도 이렇게 어려울 때 파업한다. 언론계와 법조계는 또 어떤가. 최악의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서 성장률을 올리는 건 바람직한가.
“경기변동 사이클을 통해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재정과 통화정책은 그 조절 수단으로는 쓸 수 있다. 그러나 딱 그 정도다. 어려운 순간을 넘어가려면 재정과 통화정책이 있어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구조적인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성장이나 고용은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민간에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부분적인 보강을 해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삼성전자(005930)나 현대차(005380)는 출하 제품의 많은 양을 해외에서 소화한다. 우리 내수시장이 협소하니까. 지금 대외환경이 나쁘니 당연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현대차처럼 대우가 가장 좋은 회사에서 노조가 파업을 한다. 최고로 기득권화된 세력이 노조다.”
◇“대선때 교육 연구결과 공개, 채택후보 지지”
윤 전 장관의 큰 틀의 해법은 결국 리더십과 교육으로 모아졌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리더십을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온갖 정사를 보살핌)’이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도 정책당국자가 최고권력자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아야 하는데, 원활한 관계설정이 되는지 의문이 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수직구조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본부와 많이 싸워야 한다. 일은 내각이 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아니다. 내각을 이끄는 사람은 그 정도 책임감 사명감 배짱을 갖고 청와대와 부딪힐 때는 부딪혀야 한다. 내각을 이끄는 사람들은 (청와대의 생각과) 너무 안 맞으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현 정권의 제일 큰 문제는 인사다. 의사결정 구조가 너무 꼬여 있는 것도 문제다. 정권을 잡았으면 책임지고 정책을 추진한 다음에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래야 책임정치가 구현되는 것 아닌가.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한 국회선진화법 같은 게 그대로 있는 한 책임정치는 요원할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할 것은 무엇인가.
“4대개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어느 것하나 똑 떨어지게 마무리된 것이 없다. 정치권이나 사회일반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 이를 재추진할 동력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 우리나라 국가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한가운데 존재하는 게 헌법이다.국회에서 개헌하자고 하는데 걱정이 많다. 전부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할 것 아닌가. 세계에서 대한민국 국회만큼 많은 특권을 가진 곳이 어디있나. 지금 모든 길은 국회로 통한다. 대통령은 재임 중 1년간 개헌 범국민특위 만들어 민간인, 여야 대표 등을 포함해 각 분과별로 지휘해야 한다. 그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물러나면 4대개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지만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아니, 교육 얘기를 꺼내지 않고 일자리를 늘리느니 완화적 경제정책을 하느니 하는 해법들은 무용지물이라고 본다. 근본적인 구조 자체에 교육이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요즘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각계 전문가들과 민간 교육특위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토론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교육은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면서 “현재 축적하는 자료를 내년 말 대선 때 제시할 것이다. 이걸 채택한 후보를 지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담=오성철 부국장 겸 정경부장
정리=김정남 기자
사진=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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