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 환율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선언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를 선언함으로써 환율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향후 20조엔(약 190조원)을 더 풀겠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엔화값이 폭락하면서 원·엔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100엔당 951원선으로 추락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나타난 강한 달러와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만들어낸 엔저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진퇴유곡에 빠져들고 있다.
엔저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우리 주력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 감소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56.8%로 일본과 교역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중에 가장 높은 편이다. 엔저가 심화되면 세계 주요국 중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원·엔 환율이 950원선으로 밀리면 수출이 4% 이상 줄고, 900원선까지 떨어지면 8%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전체 수출 실적은 그런대로 성장세를 유지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자동차(-13.9%), 무선통신기기(-16.3%), 가전(-22.9%) 등이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들은 중국 등 세계시장에서 대일 경합도가 높은 품목들로 그동안 우리 수출을 이끌어온 핵심 품목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일본의 엔저 공세가 더욱 강화되면 우리 수출이 설 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제는 엔저에 대한 우리의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엔저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우리도 마구 돈을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이미 두 차례나 금리를 내렸고, 그 후유증으로 가계부채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외국 자본의 이탈과 가계부채 증가를 감수하면서 다시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정책 당국은 원·달러와 원·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억제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해 수출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약화를 품질 경쟁력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